이영하 시인과 함께하는 차 한잔의 여유 〔연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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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2시간전
 
손절 사회의 끝에서
 
시인 이영하
 
사람들은 너무 쉽게 관계를 끊어낸다.
한 번의 오해로 십 년의 우정을 지우고
서툰 말 한마디에 사람 하나를 생애 밖으로 밀어낸다.
 
휴대전화 속 차단 버튼 하나가
마음의 문까지 잠가버린 시대
우리는 점점 상처받지 않는 기술은 익혔으나
사람을 끝까지 이해하는 법은 잊어가고 있다.
 
누군가는 관계를 정리라 말하지만
사실은 외로움이 조용히 늘어가는 소리인지도 모른다.
산다는 것은 완벽한 사람을 만나는 일이 아니라
서로의 부족함을 조금씩 견디는 일인데
세상은 자꾸 인내보다 속도를 가르친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부처가 연꽃을 피워 올린 것도
더러운 진흙을 버렸기 때문이 아니라
끝내 품어 안았기 때문임을
 
강물은 돌부리를 만날 때마다 방향을 바꾸면서도
결국 바다를 포기하지 않는다.
사람 또한 그러해야 하지 않을까.
미워도 한 번쯤 더 기다려주고
섭섭해도 하루쯤 더 마음을 열어두는 일
 
그 작은 유예가
한 사람의 생을 다시 살릴 수도 있다는 것을
오늘 밤 끊어진 관계 하나를 떠올리며
나는 조용히 내 마음의 차단부터 풀어본다.
 
 
<시작 노트>
이 작품은 현대 사회의 ‘손절 문화’를 인간 존재의 고독과 단절이라는 측면에서 성찰한 시입니다.
관계를 빠르게 끊어내는 시대적 풍경 속에서, 인간다움의 본질은 오히려 “견디고 이해하려는 마음”에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특히 철학성과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통찰을 고려하여, 단순한 사회 비판을 넘어 인간관계의 윤리성과 구원의 가능성까지 사유하도록 구성했습니다.
“부처가 연꽃을 피워 올린 것도 / 더러운 진흙을 버렸기 때문이 아니라 / 끝내 품어 안았기 때문”이라는 대목은 이 시의 중심 은유입니다.
상처와 갈등을 제거의 대상이 아니라 이해와 품음의 과정으로 바라보는 불교적 자비 정신을 현대적 관계 속으로 끌어왔습니다.
이 시는 결국
끊어내는 능력보다 끝까지 이해하려는 마음이 인간을 더 인간답게 만든다는 점을 말하고자 하였습니다.
 
 
 
 
 
연등 아래서 사람을 배우다
 
(부처님 오신 날에)

시인 이영하
 
산사로 오르는 길 위에
초파일 연등들이 바람에 흔들린다.
붉은 등, 노란 등, 푸른 등
저마다 다른 빛으로 흔들리지만
어둠을 밝히려는 마음은 모두 같다.
 
부처는 큰 절 법당 안에만 계신 것이 아니었다.
새벽 시장에서 허리 굽은 채
채소를 다듬는 할머니의 손끝에도
병실 창가를 지키는 보호자의 눈물에도
말없이 지친 등을 쓰다듬는 사람의 체온에도
그분은 오래전부터 와 계셨다.
 
세상은 점점 높아지는데
사람의 마음은 점점 좁아지고
넘치는 말들 속에서도 정작 위로는 메말라가는 시대
 
부처는 아마 우리에게 거창한 깨달음보다
따뜻한 사람 하나 되기를 먼저 바라셨을 것이다.
미워하는 마음을 조금 덜어내고
욕심의 불을 조금 낮추며 누군가의 아픔 앞에
잠시라도 발걸음을 멈출 줄 아는 사람
 
연등은 종이로 만든 꽃이 아니라
어둠 속에서도
끝내 사람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다짐인지 모른다.
 
오늘 밤 절 마당 가득 흔들리는 불빛 아래서
나는 깨닫는다.
삶의 마지막까지 가져가야 할 것은
돈도 명예도 아니라
끝내 따뜻함을 잃지 않는 마음이라는 것을.
 
<시작 노트>
이 작품은 부처님 오신 날을 단순한 종교적 기념일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자비와 연민을 되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으로 형상화한 시입니다.
 
시에서는 법당이나 의식보다 오히려 일상의 평범한 사람들 속에서 살아 있는 부처의 모습을 발견하고자 했습니다.

시장 상인, 병실 보호자, 말없이 타인을 위로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곧 현대 사회 속 ‘생활의 부처’를 상징합니다.
 
또한 현대 사회의 경쟁과 단절, 피로한 인간관계를 배경으로 하여, 불교의 자비 정신이 오늘날 더욱 절실한 가치임을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특히
“연등은 종이로 만든 꽃이 아니라 / 어둠 속에서도 / 끝내 사람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다짐”이라는 구절은 이 시의 핵심 메시지입니다.
시인은 이 시를 작성하면서 서정성과 철학성, 그리고 인간 존재에 대한 윤리적 질문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도록 구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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