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인물> 정진명 프란치스코 회장(중국 나자렛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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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2.15 03:47
                   정진명 프란치스코 회장(중국 나자렛선교회)
 
 
세계의 어려운 이웃과 함께하는
진정한 사랑 나눔과 봉사의 선교사
 
서로 함께하는 세상은 “사랑을 나눌 때에 우리 곁에 숨 쉬는 것”
 
 
지난해 제14회 대한민국 환경봉사대상(전국대회) 및 2021 국제 가이아 봉사대상(국제대회)에서 종교부문 ‘천주교 선교 최고대상’을 받은 중국 나자렛 선교회 회장(정진명) 선교사를 인터뷰하였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코로나19’가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특히 ‘델타’ 변이 바이러스에 이어 ‘오미크론’ 이라는 신종 바이러스가 국내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 창궐하고 있는 가운데 방역에 솔선수범하는 차원에서 본지는 비대면 서면 인터뷰로 진행하였음을 밝히는 바입니다. <편집자 주>
 
 
1. 안녕하십니까?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지난해 제14회 대한민국 환경 봉사대상 및 2021 국제 가이아 봉사대상 종교부문 ‘천주교 선교 최고대상’과 이어 필리핀 해안경비대장(4성 장군)의 환경 상과 감사패 를 받으셨는데 먼저 축하를 드리며 간략한 소감을 부탁드립니다.
 
지난해에는 코로나19로 많은 활동을 하지 못했는데 그동안 봉사 활동한 내용으로 이렇게 큰 상(천주교 선교 최고대상)을 받게 돼 한편으로 부끄러운 마음이 앞서네요.
 
특히 국내에 이어 천주교 국가인 필리핀에서 군 최고의 해안경비대장(4성 장군)의 ‘환경 상과 감사패’는 특별한 의미의 상인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제가 건강이 허락하는 한 어려운 이웃을 위해 봉사할 것을 다시한번 다짐해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2. 현재 중국 나자렛선교회 회장(선교사)으로 재직하고 계시는데 중국에서 활동하게된 동기에 대해서 말씀해 주세요.
 
중국에서 활동하게 된 동기는 지난 1992년 한국과 중국이 수교가 되었고, 양국이 새로운 역사를 창출하는 시기였어요.
 
특히 많은 사람들이 중국에 관심을 갖고 중국을 찾았는데 당시 저는 한국연예정보신문사 부사장이라는 언론인으로 활동을 하고 있었어요.
 
저 역시 수교 후 베이징을 자주 방문하였고, 1995년에는 동북3성을 방문하는 계기가 있었는데 당시 북한에서 탈북한 탈북자들에게 도움을 주는 단체와 만남이 있었어요.
 
이들은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조건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봉사활동을 하였고 저에게도 큰 울림이 있었어요.
 
뿐만 아니라 동북3성(길림성.요녕성.흑룡강성)의 동포들과의 대화 속에서 천주교회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왔고 중국인 신부님, 주교님과의 만남을 갖게 되었어요.
 
저는 당시 언론인으로써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선교사의 길은 생각지도 않았어요.
운명의 장난이랄까 1995년 5월 말 중국 지하교회 대표 주교님을 알현하게 되었고 중국 교회의 어려운 사정을 말씀하시면서 중국 성직자와 수도자를 위해 봉사해줄 수 없느냐는 제의를 받게 되었어요.
 
여러 고심 끝에 그분의 제의를 받아들이기로 결심하였습니다. 신문사에 사표를 내고 주교님으로부터 선교사의 직분을 받고 지금까지 최선을 다해서 봉사활동을 해오고 있어요.
 
3. 그동안 중국에서 활동 해오시며 어려웠던 점과 보람있었던 점은 무엇인 지 말씀해 주세요.
 
제가 중국에서 지하 주교님을 알현할 때에 주님께서 이미 숙명적으로 정해 놓으시고 주교님을 알현하게 한 것 같아요. 잘 아시다시피 중국에서는 종교활동이 제한되어 우리나라와 같이 자유롭지가 않아요.
 
당시 주교님의 연세가 70을 조금 넘으셨는데 중국 정부로부터 온갖 탄압과 구금, 감옥생활을 17년이나 해오고 계셨어요.
 
그분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우리나라에 돌아와서 성당과 기도회에서 중국의 어려운 현실을 전했어요.
 
다행히 신부님, 주교님들과 교우님들의 성원으로 중국의 신부님들과 수도자 양성을 위한 신학생들이 공부를할 수 있도록 경제적인 지원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당시 저는 5년 정도만 선교활동을 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했는데 지금까지 26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네요. 하지만 어려웠던 일만 있었던 것이 아니고 보람되고 행복한 일도 많았어요.
 
제일 행복했던 것은 저의 봉사와 지원에 따른 선교 활동으로 신부님들이 매년 새롭게 탄생된다는 것과 많은 여성분들이 수녀님이 되기 위해 수녀원을 찾는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저의 활동에 뜻을 같이해주시는 우리나라의 교우님들이 조금씩 함께해준 사랑이 있어 제가 오늘날까지 어렵지만 선교사로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힘이 되고 있어요.
 
또한 우리나라 최초 신부님께서 부제 서품을 받은 중국 길림성 농안현 화룡진 소재 소팔가 성당에서 새롭게 성당 건축을 할 때 그림 전시회로 건축기금을 마련해 완공할 수 있도록 도와드린 것과 그 성당 주보 성인을 성 김대건 안드레아로 한 것이 참으로 뜻깊고 가슴이 뿌듯했어요.
 
그리고 몽골, 중국 내륙사막에서 불어오는 바람(황사) 속에 오염 물질이 많아 중국 내륙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까지 피해를 보고 있어 중국 성당에서 환경보전 차원에서 나무를 심는 일을 할 때 경제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어서 우리나라에서 모금을 해서 알게 모르게 지원을 했어요. 사실 이로 인해서 환경.봉사 최고 상을 받는 계기가 되었지만…
 
올해 초에는 한국교회와 교우들이 한마음이 되어 소팔가 성당에 성 김대건 상을 백옥으로 6.6미터 크기로 제작하여 봉헌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선교사로써 제가 가장 보람있게 생각하는 부분입니다.
 
4. 앞으로 활동계획에 대 해서 말씀해 주세요.
 
제가 앞으로 숙원 사업으로 계획하는 것은 동북3성 중 제일 위쪽에 있는 흑룡강성 내에 자그마한 수녀원을 건축하는 것입니다.
 
그곳에는 30여명의 수녀님들이 기도를 하시면서 생활하는 곳입니다. 우리나라의 깔메 수녀원처럼 힘든 수도 생활을 하는 곳입니다.
 
올해 수녀원이 완공할 수 있도록 기금 마련을 위해 제가 소장한 작품 33점을 내놓아 전시회를 하려고 합니다.
 
현재 일정은 6월23일 오후 3시 고양 계탁 화백 서양화 작품 전시회를 인사동 루벤갤러리에서 할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5. 지금까지 살아오시면서 선교사님의 ‘삶의 철학’ 이 있으시다면 무엇인지 말씀해 주세요.
 
거창한 철학이라기 보다는 제가 나름 짧은 삶을 살아오면서 깊이 깨달은 것은 “혼자서는 이 세상을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회 구성원과 소통하며 희노애락을 느끼면서 함께할 수 있는 이웃이 있어야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눌 수 있습니다.
 
이웃과 함께 할 때에는 내가 조금 양보하면 큰 행복을 주님께서 주신다는 것입니다. 가지는 것보다 나누는 사랑이 더 크고 보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랑이야 말로 주님께 기쁨을 드리는 것입니다.
 
서로 함께하는 세상은 “사랑을 나눌 때에 우리 곁에 숨 쉬는 것”이라고 저는 굳게 믿고 있습니다.
 
바쁘신 가운데 이렇게 서면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mailnews0114@korea.co.kr
정리=한금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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