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병호 소장
사람들은 익숙해지면 아무리 귀한 것이라 하더라도 당연히 여긴다. 물과 공기를 고마워하는 사람들이 어디에 있던가! 요즘 들어 부쩍 주변에서 “이게 부족하고, 저게 부족하다”고 툴툴거리는 소리가 잦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이 지금 누리고 있는 생활수준은 ‘기적’이라는 표현을 사용해도 무리가 아니다.
1960년대 소년기를 보낸 필자는 경남 통영이란 곳에서 자랐다. 대한해협을 건너 일본에 활어를 수출하고 오는 배들은 밀수품을 가득 싣고 왔다.
그때 밀수품이란 것이 여자 핸드백, 파라솔, 샤프펜슬, 자전거 부품 등과 같은 소소한 물건들이었다. 일제와 국산의 품질 차이는 하늘과 땅만큼 컸다. 고기를 실어 나르던 배들도 대부분 일본인들이 남기고 떠난 어선들이었다.
중학교 다닐 무렵까지 미국 잉여농산물 원조로 만들어진 옥수수빵을 학교에서 배급받았던 것 같다. 이따금 흐릿한 흑백사진과 같은 고향의 기억들은, 가난했지만 열심히 살아냈던 아버지 세대들에 대한 기억으로 가득하다.
지금도 필자는 불평불만이 거의 없다. 개인이나 나라가 아무것도 없는 바닥에서 올라온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70여 년간 140여 개국의 신생 독립국들은 저마다 잘살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이 가운데 홍콩이나 대만, 그리고 싱가포르와 같은 도시국가를 제외하면 한국처럼 수출전략으로 성공한 나라는 없다.
정말 한국인들은 산업화의 대장정에서 인류 역사상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멋진 신기록을 만들어냈다. 산업화만 성공한 것이 아니라 유혈혁명 없이 민주화에도 큰 성과를 거두었다.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과 피나는 노력
그동안 원조를 받았던 나라 가운데 체계적으로 원조를 제공하는 활동을 전개하는 나라는 대한민국이 으뜸에 속한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은 국제 원조에서 가장 성공한 나라로 손꼽힌다. 또한 국제 교역 부문에서도 한국의 수출 규모는 2016년 2월 현재 세계 6위를 차지하는 등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이런 외형적인 성장 못지않게 드라마 ‘대장금’에서 시작된 한류 열풍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 드라마, 한식, K-팝, K-웹툰 등을 통해 전 세계에서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한국어를 배우려는 외국인이 늘어나고 있다.
외국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세종학당은 57개국 143곳에이른다. 우리가 최빈국에서 이만큼 성장한 것은 얼마나 장한 일인가!
한국이 일어서게 된 데는 몇 가지 주요 요인들이 크게 작용했다. 아프리카와 남미, 그리고 인도와 중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신생 독립국들이 수입대체산업 육성전략이나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선택했다.
이런 선택을 한 국가들 대부분은 가난을 벗어나지 못했다. 1960년대를 전후해서 한국이 수출전략을 선택한 것은 실로 놀라운 혜안이었다. 게다가 1970년대 중반부터 본격화된 중화학공업 육성전략은 국내외로부터 무모한 선택이라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지도자들이 이런 선택을 했기 때문에 오늘과 같은 중화학공업의 기초를 다질 수 있었다.
재산권이 보장돼 있었기 때문에 기업가들도 열심히 뛰었다. 그들뿐만 아니라 나라를 일으켜 세운다는 일념으로 황무지 같은 땅 위에 제도와 정책을 만들고 각종 공공기관들을 만들어냈던 공직자들도 큰 역할을 해냈다.
어디 그뿐인가? 가장 큰 힘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헌신했던 우리 아버지 세대들의 노력이었다. 필자는 육 남매를 먹이고 입히고 교육시키기 위해 헌신했던 부모님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가가 촉촉해진다.
한국 드라마, 한식, K-팝, K-웹툰 등을 통해 전 세계에서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한국어를 배우려는 외국인이 늘어나고 있다. 사진은 올해 한류 재점화를 이끈 드라마 ‘태양의 후예’와 K-팝을 대표하는 아이돌 그룹 EXO. |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유전자 발휘할 때
우리도 잘했지만 바깥 사정도 우리를 크게 도와주었다. 미국이 제공한 큰 시장과 미국의 안보 우산도 우리에게 큰 힘이 돼주었다.
중국과 같은 거대 국가가 공산주의에 함몰돼 문화대혁명과 같은 혼란에 빠져 있었던 것도 한국이 일어서는 데 도움이 됐던 것도 사실이다.
이웃 일본이 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먼저 산업화를 성공시키면서 우리에게 하나의 성장 모델을 제공했다. 우리의 큰 행운은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한다. 세상에 그냥 머물러 있는 것은 없다. 오늘날 우리를 둘러싼 환경은 대변혁이라는 용어를 사용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다. 우선은 거대 중국의 급격한 부상이다.
엄청난 내수 시장을 가진 중국은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모든 산업을 육성하고 있다. 해가 갈수록 한국과 중국 기업들의 겹치는 영역이 늘어나고 있다. 여기에다 북한의 핵 위협은 한반도 상황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성공에 취하지 않는 것이다. 시대가 바뀌고 환경이 바뀌고 기술이 바뀌면 개인도 변신을 거듭해야 한다.
동시에 조직이나 국가도 계속해서 새로운 제도와 정책으로 무장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보면 우리는 더 분발해야 한다.
선진국 건설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뜻과 마음을 모아 다시 질주해야 한다. 모바일 혁명과 기술 분야의 혁신은 짧은 시간 안에 기술 격차를 줄일 수 있는 가능성의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있다.
우리 한국인이 갖고 있는 강점들이 다시 발휘돼야 한다. 한국인의 유전자에 심어져 있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도전정신’이 계속 발휘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