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수역汽水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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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일반
  • 2023.04.08 03:17
 
 
모든 강물은 발원지에서 샘이 솟아 계곡을 따라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고 흐르면서 다른 샛강들의 물을 받아들이면서 큰 몸짓으로 조용히 바다로 들어간다. 이렇게 흘러 들어가면서 강물은 하구(河口)에서 바닷물을 만나는데 이곳이 기수역(汽水域)이다. 이곳에서 바닷물은 먼 여행에서 돌아오는 민물을 따뜻하게 맞이하면서 바다로 들어가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교육의 장이며, 서로 소통하는 공간이다.
 
아울러 민물과 바다를 오가며 살아가는 생물들의 상호 적응하는 교육의 장이며 쉼터이다. 먼 바다로 나가서 산란하는 뱀장어나 연안 바다에서 산란하는 참게 등은 바다로 나가기 전에 기수역에서 바다에 대한 적응을 하고, 숭어나 황어, 황복, 우어, 연어 등은 산란을 위해 민물로 들어오기 전에 기수역에서 민물에 대한 적응을 하면서 들어온다. 그래서 기수역은 해양생물과 민물생물의 교류의 장이며 생태계의 보고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기수역은 동해안의 화진포호·송지호·경포호 등 석호(潟湖)가 있으며, 4대강을 비롯한 하천의 하구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석호도 해안 쪽으로 도로와 제방으로 바닷물의 유통이 이전 만 못하고, 하천들 중 한강과 섬진강을 제외한 낙동강·금강·영산강·만경강·동진강 등은 하구둑이나 방조제로 막아 바닷물과 민물이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차단해 버렸다. 이는 바다생물과 육지생물의 완충지대를 없애버린 것과 같다.
 
한강은 북한과의 접경지역으로 사실상 접근이 불가능하여 손을 못 댄 것이고, 섬진강은 중류지역에 섬진강 댐을 만들어 전북 임실의 옥정호에서 도수터널을 통해 동진강으로 물을 빼내기 때문에 하류로 흘러 내려오는 수량이 하천 유지용수에도 미치지 못해 포구(浦口)에서는 바닷물이 치고 올라와 하구가 점점 넓어지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떤가? 정치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완충지대가 사라지는 것 같다. 모든 면에서 그 분야의 원로(元老)그룹이 보이지 않고, 내 편이 아니면 바로 적으로 돌아서는 극과 극의 대결로 치닫는 국면이다. 옛말에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여라”라는 말이 있듯이 어떤 사안이 벌어지면 중간에서 조정하고 중재하려는 층은 갈수록 얇아지는 것 같다.
 
내가 어릴 적만 해도 개인사 등 어떤 일이 벌어지면 마을마다 촌장(村長) 등 어른들이 계셔서 해결방안을 마련하는 모습을 많이 보아왔다. 설령 범죄에 해당하는 일이라도 경찰이나 사법당국에서도 촌장이나 마을의 의견을 들어 해결하곤 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핵가족화 되면서 가장(家長)의 권위가 무너지고 집안의 분쟁도 경찰 등의 신세를 져야 해결되는 세상이다. 부부싸움도 가족 간의 갈등도 스스로 해결하려는 자정능력(自淨能力)이 점점 약해진다. 즉 집(House)만 있고, 가정(Home)은 없어진 것 같다.
 
이런 현상은 바닷물의 유입을 막기 위해 강 하구에 방조제나 하굿둑 등을 설치하여 기수역을 없애 버리는 것처럼, 개인적으로 스스로 밖으로부터 들어오고 나가는 통로를 차단해 버렸는지 모르겠다. 너무 극단적인 개인주의에 빠져 남의 충고나 간섭을 전혀 받으려 하지 않고, 또 남의 일에 참견이나 끼어들지 않으려는 현상이 더 두드러진 세상이다.
 
더군다나 모든 생활이 도시화가 되면서 흙의 문화가 회색문화로 변질되었고, 어려서부터 자연을 접할 수 있는 기회마저 차단당하며 성장한 사람들이 세상의 주인이 되면서, 온실 속에서 자란 화초와 같고 뿌리가 없는 나무와 같아서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하여 사리를 깊이 분별하지 못하고, 별로 도움을 주지 않는 향락을 쫓아 남을 해치는 경우가 있어도 이것이 잘못인 줄 모르고 세상을 방황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이는 해수 유입을 막으려고 자연에서 기수역을 없애 버리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기수역은 경제적 생태적 가치로 볼 때 경작지 환경의 250배에 달한다고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스스로도 마음의 완충지대인 기수역을 만들어 점점 확대해 나간다면 바깥세상과 교류하는 폭과 이해하는 깊이도 더 나아지고, 차단된 세상보다 정서적이나 사회적·경제적으로도 엄청난 상승효과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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