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고종 황제의 국장 어떻게 진행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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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일반
  • 2019.03.02 08:16
국립고궁박물관, 3월 1일부터 사진·의궤 등 유물 전시
 

<내외매일뉴스=오승기 기자> 문화재청은 3월 1일부터 한 달동안 국립고궁박물관에서 <100년 전, 고종 황제의 국장> 작은 전시회를 개최한다.

 

고종 황제는 1919년 1월 21일 덕수궁 함녕전에서 승하했는데, 고종이 일본인·친일파에게 독살 당했다는 소문이 퍼지는 등 나라를 잃고 억눌려 왔던 사람들의 울분을 폭발시켜 전국적으로 3·1 운동이 확산되는 기폭제가 된 ‘사건’이었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고종의 승하에서 국장, 영면까지의 과정 동안 당시 고종 황제 국장 때 촬영한 사진과 의궤 등에 남겨진 기록, 고종이 잠들어 있는 홍릉의 사진 등 총 15건의 유물을 소개한다.

 

경성일보사에서 발간한 고종의 국장 사진첩. (사진=문화재청 제공)
경성일보사에서 발간한 고종의 국장 사진첩. (사진=문화재청 제공)

 

‘고종의 승하’, ‘고종의 국장’, ‘고종의 영면’ 등 총 3개의 주제로 구성된 이번 전시에서는 ‘순종황제실록 부록(純宗皇帝實錄 附錄)’, ‘영친왕비(英親王妃) 일기’와 같은 기록을 통해 고종 황제의 승하와 관련된 당시의 상황을 엿본다.

 

또 조선총독부가 주관한 고종 황제의 국장이 일본식으로 진행되면서 기존 국왕의 국장에 비해 절차가 축소되고 변형된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아울러 함께 전시되는 두 건의 ‘고종 황제 국장 사진첩’에는 국장의 진행 과정과 그 의미를 좀 더 생생하게 보여주고, 고종 황제의 승하 당시 제작된 어보(御寶)와 옥책(玉冊) 등으로 당시 왕실 의례의 면모도 함께 확인할 수 있다.

 

특히 고종 황제와 명성황후가 함께 잠든 남양주 홍릉(洪陵)의 사진과 기록을 통해 대한제국 황제릉의 성격은 물론 일제 강점기에 조성된 능으로서의 특징을 동시에 보여주는 홍릉의 능제(陵制)와 그 의미를 살펴본다.

 

1919년 6월 8일, 고종 황제의 국장을 보도하면서 1면에 고종 국장 행렬 삽화를 인쇄한 이탈리아 주간지 <La Domnica Del Corriere>. (사진=문화재청 제공)
1919년 6월 8일, 고종 황제의 국장을 보도하면서 1면에 고종 국장 행렬 삽화를 인쇄한 이탈리아 주간지 <La Domnica Del Corriere>. (사진=문화재청 제공)

 

한편 3월 21일에는 <고종 국장과 1919년의 사회> 주제의 특별 학술강연회를 한다.

 

제1강연에서는 고종황제의 국장(國葬) 과정을 분석해 대한제국 황실 의례가 국권피탈 이후에 어떻게 변형되었는지를 살펴보고, 제2강연에서는 고종 국장으로 인한 당시의 사회 분위기 속에서 억눌린 민족의 한이 어떻게 3·1운동으로 이어졌는지 알아본다.

 

문화재청 국립고궁박물관은 “이번 전시와 연계 학술강연이 억압에 항거하는 우리 민족의 기념비적 항쟁인 3.1 운동의 의미를 되돌아보면서, 우리의 현재를 만들어 온 역사의 흐름을 상기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자료출처=정책브리핑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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