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 그 시절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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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7.01 09:56

머리띠로 결의를 다지고, 엿과 찹쌀떡으로 운의 요행을 바라기도 해보며 학생들은 그동안 노력한 결실을 맺기 위해 시험장으로 향합니다. 국가고시, 연합고사, 수능까지 이름은 달라졌지만 50년 전과 지금의 입시 풍경은 다르지 않습니다. 그때 그 시절 입시 이야기 들어볼까요?

 

 

<사진. 1955. 서울대학교에서 치러진 고등고시 시험장 광경>

 

 

“7.15 어린이 해방” 입시지옥 탈출

 

 

<사진. 1. 1967. 전기 중학교 입시현장>

<사진. 2. 중학교 입시 체능고사 현장>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어떤 학교도 입학과정을 거치지 않고 학생이 될 수는 없죠. 우리나라의 중등교육기관 입시제도는 해방 이후부터 정부의 결정에 의해 혹은 시민들의 반발에 의해 개정, 개혁을 수없이 거듭해왔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1951년부터 1953년까지 시행된 국가연합고시제입니다. 국가연합고시제는 전쟁으로 인한 피난학생들이 각처에서 입시를 치룰 수 있도록 시행된 제도인데요. 학교별 요구하는 성적이 달라 학생들은 혼란을 겪었고 입시에서 소위 ‘눈치작전’이 생겨난 것이 이때부터라고 합니다. 또한 입시를 국가가 통제하는 형태였기 때문에 학생 및 시민들에게 많은 반발을 샀고 채 3년이 되기 전에 입시제도는 다시 학교단위 관리제로 환원됩니다.

학교, 지역, 국가를 오가며 관리되던 중학교 입시제도가 사라지고 마침내 중학교 무시험제도가 시행된 것은 1969년입니다. 먼저 서울과 부산, 대구 등 도시를 시작으로 1971년부터 전국적으로 확대된 중학교 무시험 진학제도는 중학교 입학시험을 폐지하고 추첨을 통해 인근 중학교에 입학을 결정하는 것이죠. 시험철폐라는 파격적인 결정이 발표된 후 국민들은 어리둥절하면서도 “7.15 어린이 해방”, “교육 쿠테타”라는 별명을 붙이며 입시지옥에서 어린이들을 구했다는 사실에 갈채를 보냈습니다.

 

 

학군의 등장!

 

 

<사진. 1,2. 1993. 서울 종로의 한 고등학교 고교 입시고사 현장>

 

1968년인 중학교에서 무시험제도가 실시되기 전까지 중학교와 동일한 제도로 시행되어 오던 고등학교 입시제도는 1969년 이후 중학교와 완전히 분리되어 시행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중학교 입시의 철폐라는 과감한 조치로 어린이들이 입시준비로 인해 과중된 학업으로 힘들어하는 일이 사라지게 되는 긍정적인 효과를 낳았지만, 곧이어 다른 곳에서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바로 과열된 학업과 경쟁이 곧 고등학교 입시로 이어지게 된 것입니다.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옮겨온 ‘간판’ 논란으로 전국의 중학교에서는 입시위주의 주입식 교육이 운영되었고 학생들은 학습에 대한 부담으로 스트레스와 정서적 불안에 시달렸죠. 이에 등장한 것이 연합고사와 추첨배정제입니다. 이는 연합고사를 통과한 학생들이 본인이 속한 학군별 추첨을 통해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제도입니다. 학생들의 지원학교가 유명 학교에 집중되지 않고 장기적인 고교평준화를 목표로 한 제도인 것입니다. 여전히 완전한 고교의 평준화가 이루어지고 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고교입시에 대한 과열경쟁은 상당부분 줄이는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10년간 기울인 노력의 결실 “대학수학능력시험”

 

 

<사진. 1,2. 1992. 연세대학교 원서 접수 마지막날 현장>

 

해방이후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대입제도는 10여회가 넘는 변신에 변신을 거듭했습니다. 쟁점은 대학에 학생 선발에 대한 전권을 주느냐 혹은 국가가 선발 기준을 통제하느냐의 주도권 싸움으로 정부와 대학이 오고가며 주도권을 주고받았습니다. 마침내 “수능세대”라는 신조어까지 만들며 대입제도에 파란을 일으키고 등장한 것이 바로 1993년 처음으로 시행된 ‘대학수학능력시험’ 일명 수능입니다. 문교부가 7년간의 연구와 3년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내놓은 역작이죠.

수능제도의 도입으로 가장 새로워진 것은 바로 복수지원제의 실시입니다. 복수지원제가 확고하게 자리 잡은 것은 수능이 시행된 이후부터로 이전에는 대학의 지원 자체가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원서 접수가 시행되는 날 대학에는 치열한 눈치싸움과 속도경쟁이 붙곤 했습니다. 하지만 복수지원제가 실시되며 수험생이 희망하는 여러 개의 대학에 지원하고 이들 모두 합격하더라도 희망하는 대학을 선택하여 입학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제도는 대입제도로 확고히 자리 잡아 약간의 개편과 시도가 추가되며 지금까지도 시행되고 있습니다.

 

 

<사진. 1,2. 1992. 연세대학교 대학입시 현장>

 

지금도 전국의 수험생들이 한날한시에 시험을 치르는 수능 날이 되면 모든 학교와 관공서가 비상이 되어 학생들이 오직 시험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노력하죠. 수능이 처음으로 치러지던 1993년에는 8월 20일 1차 시험을 앞두고 한 학교에서 매미사냥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서울의 당산중학교에서 짝짓기 철을 맞아 세차게 울어대는 매미소리가 듣기평가에 방해가 될지도 모른다며 선생님마저 매미사냥에 나서는 등 진풍경이 벌어진 것입니다. 당산중학교의 능수버들과 매미는 뛰어난 경관을 자랑해 학교의 명물로 알려져 있던 것이지만 수험생들이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이날만큼은 매미들이 한 발 양보해줘야 했습니다.

이 시기를 지나온 어른들에게는 너무나 작은 언덕이었을지 모르지만 수험생에게는 너무나 크고 높아 보이는 것이 바로 ‘수능’이라는 관문입니다. 수능을 앞둔 고3 수험생 모두 노력한 만큼의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주변의 학생들을 함께 응원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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