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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닭의 울음, 제액초복(除厄招福) 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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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1.08 09:19
[변종필의 미술 대 미술] 샤갈 VS 장욱진
 

동물을 소재로 작품을 즐겨 그린 화가들이 있다. 이들은 동물을 열등한 존재로 표현하지 않는다. 동물을 인간과 친밀한 관계로 그린다. 의인화된 인간의 모습, 그중에서도 자신과 동일시한 모습으로 그리는 경우가 있다.

 

마르크 샤갈(Marc Chagall, 1887~1985), 장욱진(張旭鎭, 1917~1990)은 동물을 소재로 한 작품, 특히 닭을 소재로 즐겨 그린 공통점이 있다. 형식과 기법, 정서와 종교적 배경은 다르지만, 꿈과 희망을 담은 초현실적 그림 세계는 유사점이 많다. 

 

샤갈 <수탉> 캔버스에 유채, 126×91.5cm,1949 / 장욱진 <닭과 아이> 캔버스에 유채, 41×32cm, 1990
샤갈 <수탉> 캔버스에 유채, 126×91.5cm,1949 / 장욱진 <닭과 아이> 캔버스에 유채, 41×32cm, 1990

 

샤갈은 양, 말, 물고기와 더불어 닭을 소재로 한 그림을 그렸는데 주로 자신을 대변하는 대상으로 삼았다.

 

닭을 소재로 한 그림 중 1938년의 <에펠탑의 신랑·신부>, 1939년의 <굿모닝 파리>, 1949년에 그린 <수탉>이 대표적이다. 이 중 닭을 자화상으로 표현한 그림은 1949년의 <수탉>이다. 팔레트를 짚고 있는 수탉이 화가 자신임을 알 수 있다.

 

수탉의 몸통 옆에는 여인을 그리는 손이 보인다. 화가에 의해 그려진 여인은 버지니아 해거드 맥닐이란 샤갈의 두 번째 연인이다.

 

버지니아는 딸 이다의 친구로 집안일을 도와주는 과정에서 샤갈과 가까워졌다. 샤갈이 첫사랑 벨라를 잃고(1944년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세상을 떠남) 시름에 빠져 9개월 동안 그림을 그리지 않았을 때 슬픔을 딛고 다시 붓을 들 수 있기까지 버지니아가 큰 힘이 되었다.

 

연인으로 발전한 두 사람의 관계를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 <수탉>이다. <수탉>은 버지니아를 향한 샤갈의 사랑을 담은 그림이다.

 

꼬리 깃털 속에 입맞춤하고 있는 한 쌍의 남녀는 행복해 보인다. 그런데 붉은 드레스를 입고 있는 버지니아의 모습은 어딘지 벨라와 사랑했던 모습을 담은 <에펠탑의 신랑·신부>와 비교된다.

 

순백의 신부와 신부를 감싸 안은 신랑을 태운 거대한 수탉이 에덴동산을 향해 날아가는 환상적인 그림으로 <수탉>과 다른 분위기다. 이러한 차이점은 두 여인을 생각하는 샤갈의 마음과 관련지어볼 수 있다. 

 

샤갈 <에펠탑의 신랑신부>캔버스에 유채, 150×136.5㎝,1938 / <굿모닝 파리>판지에 유화와 파스텔,62×46cm, 1939
샤갈 <에펠탑의 신랑신부> 캔버스에 유채, 150×136.5㎝,1938 / <굿모닝 파리> 판지에 유화와 파스텔,62×46cm, 1939

 

벨라와의 사랑이 샤갈이 꿈꾸던 완전한 사랑이었다면, 버지니아와의 사랑은 불완전한 사랑이었다.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졌던 벨라와 샤갈은 고향인 러시아를 떠나 프랑스와 미국에서 고난의 시간을 함께 이겨내며 변함없는 사랑을 이어갔던 사이이다.

 

반면, 버지니아는 샤갈에게 단지 벨라의 자리를 대신한 정도였다. 실제 버지니아를 대하는 샤갈의 행동은 벨라에게 보냈던 순수하고 배려심 넘치던 사랑과는 달랐다.

 

버지니아가 자신의 아들을 출산할 때 정작 그녀 곁을 지키지 않았던 샤갈의 행동은 그녀에 대한 사랑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결국, 1951년 버지니아는 아들을 데리고 샤갈을 떠났다. 샤갈에게 버지니아는 그림 속 붉은색만큼 열정적인 사랑이었지만, 영원히 지속될 수 없는 미래였다. 

 

샤갈의 <수탉>이 사랑의 영원을 희망하는 메시지를 담은 그림이라면, 장욱진의 <닭과 아이>는 한층 확대된 의미를 담고 있다.

 

이 그림은 장욱진의 그림 중 특별한 그림에 속한다. 장욱진은 유사한 소재와 비슷한 구도의 그림이 많은 편이다.

 

좋아하는 소재와 구도를 반복하면서 자신만의 조형세계를 구축했다. 닭 역시 그가 즐겨 그린 소재이다. 그런데 장욱진의 유화 그림 중 닭이 화면 전체를 차지하는 구성은 <닭과 아이>가 유일하다.

 

닭의 크기 면에서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고, 형태와 기법도 색다르다. 목을 앞으로 길게 뻗으며 우는 듯한 모습이 봉황처럼 목을 길게 표현했던 다른 그림과 사뭇 다르다.

 

일반적으로 전통적 민화의 닭 그림에서는 유난히 크고 상승하듯 솟아있는 붉은 볏과 턱밑으로 늘어진 고기수염(wattles)을 강조하여 수탉의 위엄을 드러내는 것이 많다.

 

하지만 장욱진의 닭 그림은 간략한 선과 색을 사용하면서 위엄보다 친근감을 살렸다. 외발로 서 있는 수탉의 생태적 특징을 긴장감 있게 표현한 그림(스미스소니언 소장)이나 사실적 표현에 초점을 둔 그림, 전통 민화의 투박한 닭의 표현, 동시대 화가들이 표현한 닭과 다르다.

 

장욱진의 그림은 초현실적이며 동화적이다. 비스듬히 떠 있는 초승달 아래로 날고 있는 아이와 현실적 대소 관계가 무너진 사물들의 어울림이 초현실적 분위기를 형성하는데 한몫 거든다. 닭의 두 다리 사이에 그려진 개의 배치와 시선의 방향은 위트가 넘친다.

 

장욱진<닭과 아이>1990 / <수탉>스미스소니언 소장 작품 / <닭과 모란>19세기, 150×136.5㎝ / 김기창<화조도> 1977, 68.5x61cm
장욱진 <닭과 아이> 1990 / <수탉> 스미스소니언 소장 작품 / <닭과 모란> 19세기, 150×136.5㎝ / 김기창 <화조도> 1977, 68.5x61cm

 

<닭과 아이>의 표현상 평면적 화면구성과 색다른 색채사용도 눈여겨볼 만하다.

 

평면적 화면은 아이들의 그림처럼 순수함과 꾸밈없는 세계를 드러내는데 적절하고, 현실적 색에서 벗어난 수탉의 장식적인 색은 작품 전체를 유쾌하게 이끈다.

 

기법상 외곽선을 닦아내어 닭의 형상이 다른 대상보다 강조했다. 캔버스에 담담하게 스며든 듯한 물감은 단순하고 차분하다. 간결함, 욕심을 비워낸 붓질, 충분한 여유를 허락한 여백은 장욱진의 삶의 태도를 떠올리게 한다.

 

복잡한 도시를 벗어나 자연의 섭리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장소(시골)에서 삶의 자리를 찾으려 한 생활태도가 고스란히 묻어난다. 물질적 채움을 갈망하는 현대인의 욕망과 분명한 거리 두기를 실천했던 화가의 정신과 자세가 그림에 내재해 있다.

 

장욱진 <수탉>세리그래프, 26×32.5cm, 1979
장욱진 <수탉> 세리그래프, 26×32.5cm, 1979
 샤갈은 30대에 고향인 러시아를 떠나 독일, 프랑스, 미국으로 이어진 이방인적 삶을 살았다. 제1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나치에 의해 퇴폐적인 그림으로 낙인찍혀 공개적으로 소각되고, 독일의 모든 미술관에서 그의 작품이 내려지는 수모를 당했다.

 

장욱진 역시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이라는 역사적 아픔 속에서도 한국적 정서를 잃지 않으려 애썼다. 샤갈과 장욱진은 고통과 혼란의 시대를 겪었다는 점에서 닮았다. 전쟁이라는 참혹한 현실 속에서도 꿈과 희망을 지닌 그림세계를 통해 행복한 미래를 기원했다.

 

삶이 힘들고, 시대가 혼란할수록 그것을 이겨내는 법은 개인마다 다르고, 직업에 따라 다르다. 샤갈과 장욱진의 그림을 보면 문화권은 다르지만, 초현실적 그림을 통해 꿈과 희망을 꿈꾸게 했다.

 

주역(周易)에 따르면 닭은 팔괘 중 손(巽)에 해당한다. 손괘의 방위는 동남쪽으로 여명(黎明)이 시작되는 방향이다.

 

그래서 옛사람들이 여명이 시작될 때 닭이 울면 모든 잡귀가 달아난다고 생각했다. 닭 그림을 새해 첫날 대문이나 주거공간에 붙이면 불행은 침투하지 못하게 막고, 대신 복을 부르는 효능이 있다고 믿었다. 

 

2017년 정유년(丁酉年) 새해를 앞 둔 세밑, 그 어느 때보다 국가적 위기에 직면한 현실을 보면서 옛 부터 전해온 닭의 벽사적 의미를 떠올린다. 제액초복(除厄招福)의 효능이 진실로 발휘되길 기원하면서.

 

변종필

◆ 변종필 미술평론가

문학박사로 2008년 미술평론가협회 미술평론공모에 당선, 200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부문에 당선됐다. 경희대 국제캠퍼스 객원교수, 박물관·미술관국고사업평가위원(2008~2014.2) 등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미술평론가협회 회원 겸 편집위원, ANCI연구소 부소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대학출강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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