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물이 없습니다.

[야생화와 창조경제] ‘야생화 신약 대박’

  • AD 내외매일뉴스
  • 조회 2289
  • 칼럼
  • 2015.10.26 14:46

개똥쑥에서 치료 성분 개발한 중국인 노벨상 수상

우리도 천연물 신약 개발 총력 대응 필요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고 했던가. 하지만 개똥쑥은 다르다. 진짜 약으로 쓸 수 있는데도 너무 흔해서 외면당한다. 이런 개똥쑥을 연구한 사람이 올해 노벨상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투유유 중국전통의학연구원 교수가 1600년 전 고대 의학서에서 영감을 받아 개똥쑥에서 추출한 ‘아르테미시닌’이라는 말라리아 치료 성분을 활용해 많은 생명을 살린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중국인 과학자가 과학 분야의 노벨상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개똥쑥. 개똥쑥에서 말라리아 치료 성분을 찾은 투우유 중국전통의학연구원 교수가 노벨상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야생화 활용한 제약산업
21세기 고부가가치산업의 꽃

투유유 교수는 정부의 지원 아래 말라리아 특효약 개발에 참여한 과학자로 알려져 있다. 중국 정부는 문화혁명 이후 과학기술 인재 부족을 직시하고 해외에서 공부하는 많은 중국 과학자들을 귀국시켜 첨단기술을 양성하기로 했다.

 

중국과학원은 1994년 해외에서 과학자 100명을 데리고 온다는 ‘백인(百人)계획’을 세웠고, 이런 흐름은 후진타오 정권의 ‘천인(千人)계획’, 시진핑 주석의 ‘만인(萬人)계획’으로 이어졌다. 즉 중국인의 노벨상 수상이라는 성공 뒤에는 정부의 지속적인 투자가 중요한 구실을 한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도 투유유 교수처럼 야생화를 활용해 신약(新藥)을 개발할 사람들이 있을까.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는 새로운 질병에 대항하는 야생화 신약이 많이 개발될 것이다.

 

실제로 타미플루는 신종 인플루엔자 치료제로 야생화를 활용해 만들어졌다. 신종 인플루엔자가 전 세계를 혼란에 빠뜨린 2009년 당시 타미플루는 거의 유일한 치료제로 품귀현상을 빚었다. 타미플루는 중국의 자생식물이자 대표적 향신료인 팔각(八角)의 열매와 뿌리에서 추출한 원료로 만들었다. 스위스의 제약회사인 로슈홀딩은 타미플루를 독점 생산하며 연간 20억~30억 달러(약 2조~3조 원)를 벌어들인다고 한다.

 

미선나무. 항염증제와 항암제로 쓸 수 있는 유효 성분이 미선나무에서 나왔다.
미선나무. 항염증제와 항암제로 쓸 수 있는 유효 성분이 미선나무에서 나왔다.

 

제약산업은 21세기 고부가가치산업의 꽃이다. 제약 기술이 없는 나라는 약을 수입에 전량 의존할 수밖에 없다. 미국의 제약회사인 브리스톨 마이어스 스퀴브(BMS)는 주목(朱木)에서 개발한 항암제 택솔로 연간 12억 달러(약 1조4000억 원) 이상의 매출액을 올린다. 한편 버드나무 껍질에서 추출한 물질로 만든 아스피린은 매년 600억 정(판매액 100조 원 이상) 이상 판매되는데 이는 한 나라의 경상수지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매출 규모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합성신약이 대세였다. 아스피린이 바로 대표적인 합성신약이다. 버드나무 껍질에서 추출한 살리실산과 아세트산 무수물(無水物)을 화학적으로 반응시켜 만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점점 복잡한 양상을 띠는 현대의 질병을 단일 인공성분만으로 이루어진 합성신약으로 치료하기가 어려워졌다. 그러자 다국적 제약사들은 천연물 신약 개발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합성신약에 비해 천연물 신약은 부작용이 적고, 현대의 난치성 질환 치료에 적합하며, 개발 비용이 적게 들면서도 개발 성공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아직 확실한 선두그룹이 없는 블루오션 분야라는 이점도 있다.

 

무엇보다 천연물 신약 개발산업은 부가가치가 어마어마하다는 장점이 있다. 실제로 천연물 신약 시장은 연평균 30% 이상의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야생식물을 이용한 천연물 신약 개발산업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리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미국은 물론 독일과 중국 등에서도 천연물 신약 개발에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미국은 소규모 기업을 중심으로 중증질환 치료제 연구개발을 진행하고 있으며, 중국은 심혈관계·부인과·근골격계 질환 치료제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특히 2004년 미국에서는 식품의약국(FDA)이 처음으로 식물 약에 대한 산업 기준을 만들어 새로운 약재에는 새로운 규정을 적용하고 있다. 이는 미국이 천연물 의약품 시장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 제도부터 정비한 것으로, 우리 정부도 그에 맞는 대응전략을 갖출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버드나무. 매년 100조 원 이상 팔리는 아스피린은 버드나무 껍질 추출물로 만들었다.
버드나무. 매년 100조 원 이상 팔리는 아스피린은 버드나무 껍질 추출물로 만들었다.

 

합성신약 대신 천연물 신약
난치성 치료 적합, 개발 가능성 높아

우리나라도 이에 발맞춰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동의보감과 같은 수백 년간 축적된 우수한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의미 있는 결과물들을 만들고 있다. 실례로 세계 천연물 신소재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국책 연구개발사업으로 미래창조과학부는 바이오의료개발사업(유전자동의보감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유전자동의보감사업단은 ‘천연물 복합성분이 인체에서 작용하는 원리를 가상인체 컴퓨터 모델과 멀티오믹스 등 융합원천기술로 규명해 미래창조형 헬스케어 신소재를 발굴한다’는 목표로 운영되며, 이를 위해 미래창조과학부는 2012년 9월부터 2022년 8월까지 10년간 1554억 원의 사업비를 지원하고 있다.

 

다행히 우리 주변에는 천연물 신약으로 개발할 수 있는 식물자원이 널려 있다. 미선나무에서 항염증제와 항암제로 쓸 수 있는 유효성분을 찾아내 특허 등록을 마친 상태다. 흔하디흔한 짚신나물에서도 항암 효과를 지닌 성분이 발견돼 개발 중이다.

 

긴산꼬리풀을 원료로 한 천연물은 획기적인 만성 폐쇄성 폐질환 치료제로 제품화 단계에 있으며, 야생다래에서 알레르기 치료제를 추출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최근 천연물 신약 개발산업이 급부상하고 있다. 신약 개발 모습.(사진=동아제약)
최근 천연물 신약 개발산업이 급부상하고 있다. 신약 개발 모습.(사진=동아제약)

 

아울러 때죽나무 껍질에서 알츠하이머성 치매 질환 치료에 탁월한 효능이 있는 추출물을 얻어내 활성물질 연구를 진행하고 있고, 황련(깽깽이풀) 등을 활용한 고지혈증 치료제는 이미 외국에서 독성 및 임상 시험을 완료한 상태다. 이 밖에도 활용가치가 무궁무진한 우리의 식물자원이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다.

 

천연물 신약은 합성신약보다 개발비와 시간이 덜 들지만 그래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리는 것이 사실이다. 미국에서 2호 천연물 신약으로 허가받은 풀리작은 허가를 받기까지 10년이 걸렸다고 한다. 이 같은 산업적 특성을 간과한 채 당장 가시적 성과를 내놓지 못한다는 이유로 천연물 신약 육성정책을 재고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인내심을 갖고 지원을 아끼지 않으면 우리나라에서도 제2의 투유유 교수가 나올 것이다.

 

글·사진 · 이동혁(야생화 칼럼니스트)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싸이공감 네이트온 쪽지 구글 북마크 네이버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