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인물> 연극인. 배우 박팔영

  • AD 내외매일뉴스
  • 조회 12604
  • 칼럼
  • 2022.09.05 09:15
                                박팔영 연극인.배우는 작가.연출가로
                           열정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주민 참여형 생활연극 활성화로
 
본인의 ‘행복한 삶’ 누릴 수 있어
뿐만 아니라 지역경제 발전, 문화향유, 삶의 질 향상에 기여…
 
 
나는 배우다. 또한 분장사이고 연출가이며, 희곡작가이다. 그리고 동양화가이다. 내가 이렇다는 걸 부정할 사람은 가히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날 보고 신기해할 정도이면 나 자신도 유별난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그런데 나를 포장하지 않고 말하자면 나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대신 뭔가 창조적이며 남길 만한 일을 한다.
 
남들 다 하는 골프를 치거나 사행성 노름을 한다거나 하는 시간 많이 쓰고 별로 생산성이 없는 일은 하지 않는다.
 
그런 가운데 술 마시기를 좋아하긴 해도 그 시간은 나에게는 휴식일 수 있고 맛있는 것 먹고 사람 간의 우애를 나누게 되는 소중한 시간이라고 여긴다.
 
<박팔영 배우의 페이스북 게시글 중에서>
 
박팔영 연극인.배우는 충남 금산이 고향으로 고향을 사랑하며, 지역의 문화발전을 위해 ‘주민참여 생활연극’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를 통해 레퍼토리 개발, 브랜드화해 지역 경제력 향상과 한국을 대표하는 특색있는 지방자치 시대를 열어갈 수 있다고 말한다. 본지는 서면 인터뷰를 통해 그의 삶을 재조명해 보고자 한다.   <편집인 주> 
 
 
● 안녕하세요. 현재 문화예술인으로 폭 넓은 활동을 하고 계시는데 주로 활동하고       있는 일은 무엇이며, 이 일을 하게 된 동기는 무엇입니까?
 
네. 딱 꼬집어 하나둘이라고 할 수 없고 공연.예술계에서 팔방미인이라고 불리듯이 배우.분장.연출.희곡작가.동양화가로 어는 것 하나 소흘함 없이 바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1977년 연극배우로 시작을 했고, 그 당시에도 그림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배우들이 자기 분장을 본인들 스스로 하길래 제가 나서서 하기 시작한 것이 오늘날까지 어어지게 된 거죠.
 
연출은 1998년 IMF가 터지고 경북 구미로 잠시 이주해서 살게 되었는데 구미.대구.포항 등지에서 연출 의뢰가 들어왔고 동시에 무대디자인, 분장, 극작, 사진 등 연극에 관한 한 일체의 것들을 도맡아 하면서 2010년 서울연극에 복귀할 때까지 십수 년 동안 한국연극의 중요 레퍼토리를 섭렵하며 많은 경험을 쌓게 되었고, 지역 연극에서 많은 수상작과 연기상, 연출상 등의 성과를 내기도 했습니다.
 
저는 제가 하고있는 일들 하나하나가 연극에 절대로 필요한 것들이라 생각하고 소중히 여기며 제가 하는 것들이 연극 완성도에 기여하고 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배우로 살고자 했지만 우리의 연극환경은 배우만을 고집하게 하지 않았다는 것이 동기였다면 동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 올해 8월 (사)한국생활연극협회 창립 5주년 기념공연 가요뮤지컬 ‘잣골 노래방 콩    쿠르(박팔영 작. 연출)’를 성공리에 마쳤는데 이 작품을 하면서 어려웠던 점과 보람    있었던 것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사)한국생활연극 협회에 대해 간략히 소개 부탁
  드립니다.
 
우선 (사)한국생활연극협회는 연극으로 일반인에게 생활인의 꿈을 이루게 하고 삶을 윤택하게 하자는 취지로 창립하여 전국단위의 시.도 광역시 지부를 50여 군데 이상 넓혀왔고, 일반인에게 연기기술을 익히게 하여 무대에 서게하는 것은 물론 축제와 연극제, 세미나, 시상식과 강좌 등 끊임없는 왕성한 활동으로 지평을 넓혀왔습니다.
 
뮤지컬 ‘잣골 노래방 콩쿠르’는 창립 후 5년 동안 16회 공연으로 매머드급 야외공연을 첫 시도하게 되었는데 축제 같은 작품이고 무한의 스펙트럼을 넓힐 수 있게 되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3일 동안 여름 밤 마로니에 야외공연장에서 펼쳐진 공연에 종로구 지자체 인사들과 수많은 연극인들이 성황을 이룬 관객들과 함께 박수갈채와 환호성을 보내주었고 생활연극의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도 분분하였습니다.
 
생활연극은 아마추어분들로 생업에 종사하는 분들과 가정주부들이 대부분이어서 연습시간을 지키기가 녹록치 않아 연습 진행에 어려움이 컷어요. 워낙 대작이다 보니 말할 수 없는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어쩌겠어요.
 
끝없이 기다리며 화 한번 내지 않고 마칠 수 있어 다행이었고, 그 때문인지 모두가 앞으로도 참여의사를 피력했고, 화합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성료 되었습니다.
 
과정은 어려웠지만 결과는 많은 찬사를 받게 되었고 우리보다 앞서가는 야외공연을 일상처럼 즐길 수 있는 문화가 다른 나라의 예를 들지 않아도 자리잡아 가면 좋겠어요.
 
● 문화예술인으로 살아오면서 ‘삶의 철학’이 있다면 무엇인지요?
 
예. 특별한 ‘삶의 철학’이라기 보다 어차피 연극예술은 가장 오랜 역사를 이어 온 수작업이고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로 머무를 수밖에 없지요.
 
저는 돈을 벌거나 재벌이 될것도 일도 없는 가운데 평생 하고 싶은 거 하며 굶어 죽지 않고 후회 없는 삶을 잘 살아왔다고 자부합니다.
 
오히려 조직 생활을 해오며 살아오지 않았음을 다행이라고 여기고 자유로운 영혼으로 구속받지 않았음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웃음)
 
● 그동안 다양한 활동을 해오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다면 무엇이었나요?
 
별로 남은 게 없어요.(웃음)
연극뿐 아니라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자연스럽게 TV 드라마를 하게 되었고, 영화도 30편 이상 조연급으로 출연해 왔지만 항상 부족하다고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굳이 말한다면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것도 없지만 연극 ‘그것은 목탁구멍 속에 작은 어둠’이었습니다.
 
(이만희 작. 강영걸 연출)에서는 분장상을 받고 본격적으로 분장사의 길을 걸으며 미국 허리우드 분장 학교에 가서 공부했고, 상복도 많아 제6회 대한민국 연극대상 연기상, 2013 한국연극배우협회 배우상을 수상하는 영광도 누렸지요.
 
뿐만 아니라 배우협회, 연출가협회 공로상, 연출상, 희곡상, 공모전에서 미술상 등 화려한 수상 경력의 특이한 이력을 쌓게 된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저는 모든 일을 대충 하지를 않고 열정적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물론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지만 남들이 내가 하는 일을 가볍게 본다거나 인정하지 않으면 할 수가 없게 될 것 아닙니까.
 
●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무엇이며, 후배들에게 말해주고 싶은게 있다면…?
 
지난 2015년부터 서울과 고향 금산에서 맞춤식 주민참여형 생활연극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주민들과 연극운동을 해왔습니다.
 
그것은 단순 오락물이 아니라 사회적 알고리즘 이야기였고, 삶의 철학이고, 고장 역사의 교훈을 거울삼아 애국충정에 관한 메시지를 후배들에게 전달하고자 노력해 오고 있습니다.
 
이번에 올렸던 ‘잣골 노래방 콩쿠르’도 그랬고, 고향 금산에서 2017년 금산인삼엑스포 공연에 역사 뮤지컬 ‘700의 용’에서도 그랬지요.
 
제가 쓰고 연출하는데 저는 대작 공연을 주로 합니다. 대형 공연을 해야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죠.
 
구경꾼들이 몰려들어야 지역상권이며 경제가 살아나고 문화를 향유하게 된다고 생각됩니다.
 
특히 삶의 질이 높아지게 되는 거지요.  주민들을 생활연극에 적극 참여를 유도하고 함께하는 겁니다.
 
그것은 곧 자신의 삶과 경제력이 향상되어 내가 곧 잘살 수 있다는 신념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예를 들어 중국의 장예모 야외공연과 일본의 도가 페스티벌, 아비뇽, 에든버러 등과 프랑스의 산골 축제 퓌디프 등 국가를 대표하는 지역 축제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는 주민들이 자원봉사하고, 레퍼토리를 개발하고, 브랜드화해 연극을 통해 모두가 행복한 삶을 보장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곧 주민 참여형 생활연극으로 만이 가능하다고 저는 믿고 해나갈 것입니다.
 
 
● 끝으로 중견 문화예술인으로써 관계부처에 바라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관광산업의 발전을 위하여 정책을 개발하고 육성해 나가는 것이 국가발전에 가장 우선시되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영화, 드라마, K팝 등 해외시장으로 진출은 이미 시작되어 한류 열풍을 일으키고 있으며 세계적인 브랜드로 정착되어가고 있습니다.
 
해외에서 국내시장으로 몰려오게 하는 것은 국내의 지역 관광상품을 개발해 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관계당국의 적극적인 예술단체의 지원에 의해서 이루어질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재벌기업이나 일반기업들의 생산품 수출에 의존하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결국 고 부가가치의 창출은 문화입니다.
 
일찍이 김구 선생은 가장 갖고 싶은 것은 ‘문화의 힘’이라고 갈파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리/한금실 기자>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싸이공감 네이트온 쪽지 구글 북마크 네이버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