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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차림 달라도 마음은 하나…‘다문화가정의 설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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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남
  • 2017.01.26 13:21

누구에게나 고향은 있다. 이맘때 다들 들뜬 마음으로 차편을 예약한다. 한국 사람이지만, 돌아갈 고향이 국경 너머인 이들도 있다. 혼인과 동시에 한국으로 건너온 결혼이주여성들이다. 이들 가정은 설을 어떻게 보내는지 들여다봤다.

“한국 설 떡국,  너무너무 싱거워요” 필리핀│제니 델리온 라 씨

 

필리핀 제니 델라온 라 씨.
필리핀 제니 델라온 라 씨.

 

한눈에 봐도 ‘새댁’ 느낌이 물씬 풍겼다. 결혼 3년차인 제니 씨(28)는 2015년 4월에 한국으로 건너왔다. 그래서 한국의 설은 작년에 처음 맞이했다. 그는 “필리핀의 설날과는 느낌이 많이 달랐다”고 했다.

 

“필리핀은 신정을 쇠는데, 그날이 되면 전 국가적인 행사를 치르는 분위기죠. 불꽃놀이가 끊이지 않고요, 다 같이 어우러지는 축제 분위기예요. 음식도 온 동네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 먹고요. 그런데 한국의 설날은 그보다 가족 단위라는 점에서 비교적 조용하게 치러지는 느낌이었습니다.”

 

특히 제니 씨의 시댁은 설날을 거하게 챙기지 않는 편이라고 했다. 시어머니와 함께 떡국과 몇 가지 음식을 만들어 먹는 정도라고. 때문에 새댁으로서의 고충(?)이 그리 크지는 않은 편이라고도 덧붙였다.

 

그는 이어 “한국의 설날이 점차 간소화되고 있다고 들었다”면서 “그 또한 조용한 분위기에 한몫한 것 같다”고 말했다.

 

제니 씨는 떡국도 작년에 처음 맛봤다고 했다.

 

“필리핀에도 떡이 있긴 한데, 한국과는 맛이 많이 달라요. 짜거나 달죠. 한국의 떡은 무미에 가깝더라고요. ‘싱겁다’는 표현이 맞을까요? 필리핀에서는 고기가 들어간 음식을 많이 먹는 편이라 그런지, 개인적으로 떡보다는 만두를 많이 넣은 떡만둣국이 입에 잘 맞았어요.”

 

필리핀 사람들은 설날에 과일, 특히 둥근 모양의 과일을 먹는다. 돈도 많이 벌고 원만한 새해를 보내게 해달라는 기원의 의미를 지닌다고 한다. 그 밖에 코코넛 잎으로 싼 밥 ‘푸소’와 술빵과 비슷한 쌀떡 ‘뿌토’, 돼지 내장국 ‘디누강’, 필리핀식 삼계탕 ‘티놀라’, 돼지고기 장조림 ‘아드보’도 먹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에서는 ‘생일엔 미역국, 설날엔 떡국’이라는 공식이 있는 게 흥미로웠습니다. 필리핀에는 그런 게 없어요. 그저 ‘특별한 날’에 하는 음식이 있을 뿐이죠. 신정에는 주로 잡채와 같은 ‘빤싯’을 만들어 먹거나 돼지통구이인 ‘랫촌’을 해 먹습니다.”

 

그는 남편인 나대욱 씨와 딸 그리고 시어머니와 함께 부평에서 살고 있다. 부평에 위치한 제조공장의 해외 구매업무를 맡고 있는 워킹맘이기도 하다. 때문에 다가오는 설을 아직까지 본격적으로 준비하지는 못했다. 단 하나. 오는 설 연휴 동안 필리핀 친구들과 모여 필리핀 전통음식을 해 먹는 시간을 가질 거라고 했다.

 

“올해는 멀리서나마 고국의 설을 기리는 마음으로 전통음식을 만들어보려 합니다. 물론 시댁 식구들과도 나눠 먹을 거예요. 두 나라의 전통음식이 어우러진 특별한 설이 될 것 같아요.”

“윷놀이하며 만두 먹는 맛이 일품” 중국│마오진이엔 씨

 

만두 빚는 외국인들. ⓒ 조선DB
만두 빚는 외국인들.(사진=조선DB)

 

중국의 설인 ‘춘절’은 성대한 걸로 워낙 유명하다. 이날엔 13억 인구의 귀향 행렬이 이어진다. 그야말로 ‘민족 대이동’이다. 춘절에 중국 사람들이 가장 많이 먹는 음식은 만두. 진이엔 씨(35)는 “만두의 모양은 둥글고 클수록 좋다”면서 “모든 액운을 없앤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만두를 빚을 때 동전을 함께 넣기도 한다. 동전이 들어간 만두를 먹는 사람은 그해 돈을 많이 번다는 설이 있다. 또 중국의 새해에는 길거리나 집집마다 붙은 빨간 종이가 눈에 띈다. 글귀를 써서 가정의 나쁜 일을 막고자 하는 의미에서 이어져오는 풍습이라고 한다.

 

“어린 시절 중국에서는 고향에 갈 때 가족들과 함께 10시간씩 버스를 타고 가기도 했어요. 그렇게 수십 명의 가족들이 모여서 아주 성대한 명절을 보냅니다. 집집마다 가족들이 둘러앉아 만두를 만들며 밤을 지새워요.

 

다음 날이 되면 일제히 폭죽을 터뜨리고요. 이런 춘절은 며칠씩 계속돼요.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명절이 비교적 조용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런데 이내 친구들을 통해 ‘그게 편한 것’이라는 걸 알게 됐죠.(웃음)”

 

실제로 중국에는 밤새도록 온 가족이 모여 먹고 노는 수세(守歲) 풍습이 있다. 저녁 무렵에는 집집마다 만찬을 하고, 식사가 끝나면 바둑이나 마작 등을 즐긴단다. 자정에 제야의 종이 울리면 폭죽을 터뜨린다.

 

귀신을 쫓고 풍년을 기원하는 차원이다. 한국에 온 지 햇수로 10년째라는 그는 설날 때마다 만두를 먹으면서 윷놀이를 하는 게 소소한 재미라고 했다.

 

“조용히 음식을 만들고, 조용히 제사를 지내는 가운데 가족들끼리 왁자지껄 한바탕 웃을 수 있는 시간인 것 같아서 윷놀이가 저는 정말 신납니다. 거기다 간식거리로 중국식 만두까지 곁들인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죠.”

“저 때문에 설날엔 수박을 꼭 챙겨 먹죠” 베트남│응우옌 하미 씨

 

만두 빚는 외국인들.(사진=조선DB)
만두 빚는 외국인들.(사진=조선DB)

 

한국에 온 지 5년째. 베트남인 응우옌 하미 씨(28)는 한국에서의 첫 설날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살림에 워낙 서툴러서 제사상 준비부터 제사음식 만들기까지 도무지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후 자치구에서 마련한 설 문화 행사 등을 찾아다니며 열심히 배웠고, 지금은 거의 ‘한국 아줌마’가 다 됐다면서 웃었다.

 

베트남의 설은 우리와 비슷한 점이 몇 가지 있다. 음력설을 쇤다는 점이다. 설날 아침, 아이들은 설빔을 차려입고 부모나 친척에게 세배를 올리고 세뱃돈도 받는다.

 

이때 어른들은 친한 친구들과 묵은해를 돌아보며 술이나 차를 마신다고 한다. 12간지도 쓴다. 우리와 다른 건 토끼 대신 고양이, 양 대신 염소 띠가 있다는 점. 응우옌 하미 씨는 1987년생으로, 고양이 띠다.

 

다른 점은 또 있다. 베트남의 설에는 온 거리가 금색으로 물든단다. 사람들은 저마다 황금색 귤나무를 산다고 했다. 복이 주렁주렁 열리길 기원하고 돈을 부른다는 의미에서다. 흰색이나 검정색 옷은 불운의 의미라서 명절에는 입지 않는다고 했다.

 

“베트남의 설 상에는 돼지고기와 오리알을 불에 구운 음식, 떡과 여러 종류의 잼이 올라와요. 특히 눈에 띄게 다른 점은 아마 ‘수박’일 겁니다.

 

베트남인은 설에 수박을 먹어요. 손님들이 모인 가운데 수박의 가운데를 갈라 속살이 빨갛게 잘 익었으면 한 해 운세가 만사형통하고, 그렇지 못하면 불길하다고 믿죠.”

 

서울에 거주하는 하미 씨는 명절이 되면 경기 광주에 위치한 큰집으로 간다고 했다. 그는 “두 번째 되는 해에 가족들에게 베트남의 수박 이야기를 했더니 굉장히 흥미로워했다”면서 “그 이후로 지금까지 떡국의 후식으로 수박을 챙겨주신다”고 말했다.

 

다문화가족 위한 지원센터의 설 선물

한국 문화에 잘 적응해 한국인과 다름없는 모습으로 설 연휴를 보내는 결혼이주여성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이러한 다문화가족들을 위해 각 지역에서는 다양한 설날 프로그램을 마련해 이들의 적응을 돕고 있다.

 

전북 군산시 다문화가족지원센터는 지난 1월 4일 시내 행사장에서 결혼이주여성 10명을 대상으로 한복 입기, 세배하기 등을 배우고 설의 의미를 되새기는 행사를 열었다. 떡 만들기, 다도 체험 등 명절 요리 교실도 마련했다.

 

대전 다문화가족지원센터는 지난 1월 19일 시내 한 문화센터에서 ‘한화와 함께하는 다문화가정 설날 음식 경연대회’를 열어 떡국 및 이주여성 출신국의 전통음식 등으로 손맛을 겨뤘다.

 

상금은 이주여성의 고향 방문 지원금 등으로 쓰일 예정이다. 서울 서대문구 다문화가족지원센터는 지난 1월 17일과 19일 명절 요리 교실을 열었고, 경남 남해군 다문화가족지원센터도 1월 20일 ‘설 명절 바로 알기’ 행사를 개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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