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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아지 17마리로 시작…이젠 목장 주인으로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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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도권
  • 2016.06.06 19:41

정부의 귀농·귀촌 활성화 정책으로 전국 귀농·귀촌 인구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30대 이하 청년층의 귀농은 상대적으로 많지 않다.

 

이런 가운데 서른두 살이던 2009년 귀농을 결심해 무일푼에서 소 150마리를 키우는 젊은이가 있다. 천지목장 김명섭 대표(39)를 만났다.

 

 

천지목장 대표 김명섭 씨.
천지목장 대표 김명섭 씨.

 

 

남양주에서 축사 짓다 귀농 결심
정부 귀농·귀촌 지원 알뜰히 이용

 

2007년 탈북한 김 씨는 귀농하기 전까지 변변한 직업조차 없었다. 2008년 정부의 도움으로 서울 관악구에 거주지를 마련했지만, 서울 시내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일용직 노동뿐이었다.

 

“여러 건설 현장을 돌아다니며 돈을 벌었어요. 대개 시멘트나 타일을 나르는 일이었죠. 열심히 했지만 돈을 벌기가 까마득했고 무엇보다 몸이 너무 힘들었어요. 그래서 지인의 소개로 경기 남양주의 한 목장에서 축사 짓는 일을 시작했죠.”

 

서울에서 남양주로 옮겨 간 김 씨는 한동안 용접 등을 배우며 축사 짓는 일에 몰두했다. 역시 일용직 노동이었지만 김 씨는 이곳에서 기회를 발견했다고 말한다.

 

“언젠가 목장 주인이 소를 매매하는 걸 봤어요. 소 한 마리에 100만 원짜리 수표 몇 장이 오가더군요. 소를 키우면 이런 큰돈을 만질 수 있구나, 처음 알았어요. 그때부터 축산업을 해볼 꿈을 갖고 악착같이 돈을 모았어요.”

 

목장 옆 컨테이너 박스에서 먹고 자며 생활한 김 씨는 “매일 새벽 4~5시에 나가 저녁 8~9시에 퇴근하길 반복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밤낮 없이 일해도 최소 1억 원 이상 드는 초기자본을 마련하기란 쉽지 않았다.

대신 김 씨는 특유의 성실함으로 목장주와 주민들의 신뢰를 얻었고, 그 결과 외상으로 송아지 17마리를 선구입할 수 있었다.

 

“소 매매는 무조건 ‘현찰 박치기’예요. 근데 제가 사람 복이 있었나 봐요(웃음). 목장주의 배려로 송아리 17마리를 외상으로 받을 수 있었죠.

 

그 뒤 그때까지 모은 돈 1000만 원과 정부에서 지원해준 서울 관악구 집을 반납하고 받은 돈 1400만 원을 드렸고, 남은 돈은 일하면서 갚아나갔어요.”

 

어렵사리 송아지를 마련했지만 김 씨에게는 땅도, 축사도, 사료비도 없었다. 무엇보다 어떻게 소를 관리해야 할지에 대한 아무런 사전 정보가 없었다.

 

다행히 김 씨는 지자체 농업기술센터와 남북하나재단(탈북민 정착을 지원하는 공공기관) 귀농·귀촌교육 등을 통해 귀농의 발판을 마련했다.

 

“축협에 조합원으로 가입하면 가까운 지자체에서 실시하는 귀농·귀촌교육 일자를 알려주는 문자가 와요. 저 같은 경우는 남양주시 농업기술센터에서 영농교육을 받았어요.

 

그럼 박사, 교수 등 전문가들이 와서 비육용 소는 어떻게 키우는지, 어떻게 하면 등급을 잘 받을 수 있는지, 송아지 번식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 기초적인 지식을 자세히 알려주죠.”

 

김 씨는 정부의 귀농·귀촌교육이 본인 같은 초보 귀농인들에게는 상당히 유익한 시간이었다고 거듭 강조했다. 특히 교육 프로그램 이수는 그 밖의 자금적인 지원을 받을 때 반드시 필요한 절차이기도 했단다.

 

“3년 전 남북하나재단에서 3000만 원을 지원받아 장비 등을 구매할 수 있었어요. 무일푼에서 시작한 제게는 정말 큰 도움이었죠.”

 

정부의 귀농 지원정책을 알뜰하게 챙긴 김 씨지만, 본인이 발로 뛰며 얻은 플러스알파가 있었기에 지금의 위치까지 오는 게 가능하기도 했다.

 

“소를 30~40년씩 잘 키운 목장 주인들을 많이 찾아다녔어요. 반나절씩 걸리는 지방도 가리지 않았죠. 경기 연천군 전동리에 ‘명성한우’라는 유명한 목장이 있어요.

 

축사를 자동화 시스템으로 해놓은 곳인데, 그런 곳을 찾아다니며 번식부터 질병 관리까지 보고 배웠습니다.”

 

 

6년 만에 소 150마리, 첫 수익 거둬
도심에서 꿈도 못 꾼 성공 농촌에서 이뤄

 

이제는 마흔이 코앞이지만 축산업을 막 시작할 때만 해도 30대 초반이었던 김 씨. 그에게 도시를 벗어난 농촌생활이 혹 외롭지는 않으냐고 물었다.

 

“저는 지금도 서울에 살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해요. 아시다시피 도시는 공기도 안 좋고 복잡하고 돈도 많이 들잖아요. 저는 시골이 좋아요. 또 이 정도 외곽이라면 도시와 너무 멀지도 않고요.”

 

아직도 이곳 남양주 진건읍에서는 서른아홉의 김 씨가 막내 축에 속한다. 수년 전 귀농·귀촌교육을 받을 때도 30대 초반의 젊은이는 김 씨가 유일했다.

 

“그땐 서른두 살이었으니까 가장 어렸죠. 또 북한에서 왔으니까 많이 도와주셨어요. 고생 많이 했겠다며 어떤 사람은 목장까지 와서 축산업을 하나부터 열까지 알려주셨죠.

 

동네에서는 워낙 성실하다는 인식이 박혀서인지 다들 따뜻하게 대해주세요. 텃세 같은 건 전혀 없었어요.”

 

2009년 외상으로 받은 송아지 17마리로 축산업을 시작한 김 씨는 목장주의 도움으로 축사를 빌려 쓰다 2011년에야 축산업 허가증을 받고 본인 명의의 목장을 등록했다.

 

그리고 이 일을 시작한 지 6년이 지난 2015년 처음으로 수익을 냈다. 초기자본이 없었던 만큼 남들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김 씨는 그만큼 뿌듯함도 크다고 말한다.

 

지난해 12월 소 150마리 중 60여 마리를 판 김 씨는 그 돈으로 충남 예산에 목장 부지를 마련했다. 6월 중 그곳으로 터를 옮겨 좀 더 체계적으로 목장을 운영할 생각이다.

 

“도시에서 살며 회사 다니면 매달 월급도 나오고 안정적이긴 할 거예요. 하지만 귀농은 자기 사업이고 일종의 모험이죠. 심적 준비, 자금 준비를 모두 철저히 해야 해요.

 

하지만 정부의 지원정책이 많으므로 잘만 활용하면 기회로 만들 수 있죠. 본인만 열심히 한다면 도시에서 월급 받는 것보다 공기 좋고 여유로운 곳에서 더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어요.”

 

정부는 김 씨와 같은 2030세대를 대상으로 다양한 취·창업 지원사업을 펼치고 있다.

2014~2015년에는 농식품직업전문학교와 한국농수산대학, 카네기직업학교에서 귀농·귀촌 취·창업 준비과정을 정규 교과로 운영했고, 올해는 기관을 공모할 예정이다.

 

또한 청년층의 귀농·귀촌교육 참여 시 교육비 자부담분의 50%는 추가 경감된다. 귀농 창업 및 주택 구입자금 지원 시 농신보 우대보증(보증비율 90%로 확대)을 적용하고, 농지 구입자금도 저리(1%, 5ha)로 지원한다.

 

이 밖에 선도농가 실습 지원 및 선배 귀농인과의 연계 강화를 통한 기술 습득도 지원한다. 올해는 청년 창업농(18~39세 이하, 영농 경력 3년 이내) 300명에게 최대 2년간 창업안정자금(월 80만 원)을 지급할 계획이다.

 

김명섭 씨의 귀농 성공 Tip

수도권=이기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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