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벼룩시장과 동남아의 야시장만 여행의 필수 코스일까. 서울부터 제주까지 우리나라 곳곳에도 반갑거나 놀랍거나, 상상 이상의 재미를 지닌 재래시장이 많다. 매번 똑같은 휴가가 지겹다면 올여름에는 시장을 여행 목적지로 삼아보는 건 어떨까.
전국적으로 야시장 열풍이 뜨겁다. 굳이 그 시초를 찾자면 2013년 10월 문을 연 부산의 부평깡통야시장이다.
부평깡통시장은 부평시장과 깡통시장을 합쳐서 부르는 말이다. 부평은 지명이고 깡통은 미군의 군수품 거래가 활발할 때 붙은 이름이다. 없는 것 빼고 다있다고 해서 도깨비시장이라 불렸다. 지금도 수입품 거래가 활발하다.
최근에는 야시장으로 더 인기가 있다. 부산의 별미 씨앗호떡, 유부주머니 등과 미고랭, 짜요 같은 동남아 음식 간이매대 30개가 길을 채운다. 수공예품도 팔고 뮤지션의 버스킹(길거리 공연) 무대도 열린다.
올해 6월부터는 시즌2를 꾸렸다. 절반의 매대를 교체하고 독일, 스페인, 멕시코 음식 등을 추가했다. 굳이 방콕의 팟퐁야시장이나 대만의 스린야시장으로 떠날 필요가 있을까. 오후 7시 30분부터 자정까지 부평깡통야시장은 그 어느 곳 못지않은 신명으로 넘쳐난다.
INFO 부산 중구 중구로 39번길 32/ 051-243-1128/ www.bkmarket.co.kr
2013년 10월 문을 연 부산 부평깡통야시장은 야시장의 원조다. 독일, 스페인, 멕시코 등의 음식을 판매해 해외 유명 야시장 못지않은 맛과 재미를 선사한다.(사진=동아DB) |
곡성엔 섬진강변의 기차마을과 증기기관차, 레일바이크 등즐길 거리가 많다. 끝자리가 3, 8인 날에 열리는 곡성의 5일장터도 기차 이름을 딴 곡성기차마을전통시장이다.
섬진강기차마을에서 약 700m 거리다. 예전에는 옛 중앙극장과 곡성주조장 부근에서 5일장을 열었다. 현재의 한옥식 장터에는 2009년 입주했다.
어물전과 고향할머니장터, 친환경 인증 직판장을 중심으로 여전히 왁자지껄하다. 시설은 한층 깔끔해졌지만 전통시장의 넘쳐나는 정만은 변함이 없다. 순댓국밥과 팥칼국수도 꼭 먹어야 할음식. 옛날 대장간도 볼거리다.
곡성기차마을전통시장 노랫말처럼 ‘흥정씨름 구수한 정’이 흐른다. 매월 마지막 주토요일(8월에는 27일)에는 ‘기차당 뚝방마켓’도 열린다. 시장 인근 하천 뚝방길 300m 구간에서 열리는 일종의 벼룩시장이다.
INFO 전남 곡성군 곡성읍 곡성로 856/ 061-360-8379(곡성군 관광안내소)
이제 정선 하면 정선아리랑과 더불어 정선아리랑시장이 떠오른다. tvN ‘삼시세끼’에서 이서진과 옥택연이 정선 생활의 낙으로 삼던 나들이 장소다.
정선아리랑시장의 장점은 기차 여행을 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 청량리역에서 매일 아침 8시 20분에 정선으로 향하는 기차가 출발한다. 정선역에서 정선아리랑시장까지는 도보로 약 15분.
상설시장이지만 끝자리가 2, 7일인 5일장날과 토요일에 장터 분위기가 한층 뜨겁다. 가격 흥정도 강원도 사투리를 빌려 들으면 정겹기만 하다. 지역 먹을거리 역시 빠질 수 없다.
먹을 때 콧등을 친다는 콧등치기국수, 옥수수를 재료로 올챙이 모양으로 만든 올챙이국수 등은 곤드레밥한 그릇을 비운 뒤에도 괜스레 어슬렁거리게 만든다.
장이 서는 날 열리는 정선군립아리랑예술단의 아리랑 공연이나, 강릉농악보존회의 난타와 농악 등도 흥을 돋운다. 시장 손님들의 참여 기회도 있다.
INFO 강원 정선군 정선읍 봉양7길39/ 033-563-6200/ blog.naver.com/jungsun_mk
TV 예능 프로그램 ‘삼시세끼’를 통해 유명세를 얻은 정선아리랑시장.(사진=동아DB) |
지금 서울에서 가장 뜨거운 시장은 단연 망원시장이다. 망원동 카페거리 ‘망리단길’과 함께 떠오르는 별이다.
인근 지하철 합정역에 대형마트가 들어서며 한차례 위기를 겪었지만, 망원동 사람들의 망원시장 사랑은 여전하다. 서너 해 전부터는 시장을 찾는 이들의 연령대가 젊어졌다.
젊은 예술가들이 홍대 인근에서 비교적 집값이 저렴한 망원동에 뿌리내리며 시장을 찾기 시작했다. 망원시장은 이에 발맞춰 ‘1인 가구를 위한 특화 시장’으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걱정 마요, 혼밥(혼자 먹는 밥)’ 요리 경진대회도 열고 레시피에 맞춘 꾸러미와 레시피 카드도 배포한다.
지역 인디 뮤지션을 홍보대사로 정하고 ‘망원시장’이라는 시장 노래도 만들었다. 망원시장은 닭강정, 크로켓 등의 먹을거리로도 유명한데 시장 문화카페M에 가져가 먹을 수 있다.
INFO 서울 마포구 포은로8길 1/ 02-335-3591/ www.facebook.com/MangWonsijang
부산에 부평깡통야시장이 있다면 전주에는 남부시장 한옥마을 야시장이 있다. 지난 2014년 전통시장인 남부시장에 꾸린 야시장이다.
마찬가지로 저녁에는 간이매대가 들어서고 군침을 삼키게 만드는 먹을거리가 등장한다. 하지만 전주남부시장은 그 이전부터 흥미진진했다.
야시장 이전에 이미 청년몰이 있었다. 청년몰은 남부시장 2층에 위치한다. 빈 점포만 있던 6동 2층에 2012년부터 청년들이 하나둘 들어와 자리 잡았다. 젊은이들의 재기발랄한 아이디어가 시장 2층을 가득 채운다.
현재는 32개 상점이 들어와 작은 홍대를 방불케 한다. 카페나 맛집, 작가들의 공방에는 ‘만지면 사야 합니다’나 ‘적당히 벌고 잘 살자’ 같은 재미난 문구가 눈길을 끈다.
1층에서 전통시장을, 2층에서 청년몰을, 밤에는 야시장을 만날 수 있는 일석삼조의 시장 나들이는 오로지 전주남부시장에서만 가능하다.
INFO 전북 전주시 완산구 풍남문1길 19-3/ 063-288-1344(전주남부시장 상인회)
/ simsim1968.blog.me(청년몰)
한옥마을 야시장으로 유명한 전주남부시장. 2층에는 재기발랄한 청년들이 운영하는 32개의 상점이 자리해 이색 나들이가 가능하다. |
제주 동북쪽의 세화해녀민속시장은 낭만적인 장터다. 으뜸 매력은 역시 제주의 에메랄드빛 바다. 시장 출구를 나서면 곧장 세화 해변의 모래사장이 펼쳐진다.
덕분에 마을 사람들의 지역 장터지만 여행객들까지 알음알음 찾아온다. 끝자리가 0과 5인 날에 열리며 주로 제주의 해산물과 과일, 채소 그리고 옷가지 같은 일상 생활용품을 판다.
시장 안을 가득 채운 날것 그대로의 제주 사투리 또한 세화해녀민속시장만의 이채로운 정감이다. 세화해녀민속시장이 제주 토박이의 장터라면 인근 방파제 쪽에 꾸려지는벨롱장은 이주민이 꾸린 벼룩시장이다.
세화해녀민속시장이 열리는 토요일을 제외한, 매주 토요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까지 선다. 마지막 주 토요일에는 저녁 6시에서 9시 사이에 야시장으로 연다. 멀리서 반짝이는 불빛 모양을 의미하는 ‘벨롱’처럼 잠깐 섰다 사라진다.
INFO 제주 제주시 구좌읍 해맞이해안로 1412/ 064-900-6753/ market.dies.co.kr(세화해녀민속시장), cafe.naver.com/vellong(벨롱장)
글 · 박상준 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