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글벨~ 징글벨~ 징글올더웨이’ 거리에서 혹은 TV나 라디오에서 음악이 들릴 때 우리는 깨닫습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왔다는 걸. 크리스마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는 축일인데요, 이제는 종교적 의미보다는 한해를 마감하며 사랑하는 사람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날로 자리 잡은 듯합니다. 우리나라의 크리스마스는 어땠는지 사진으로 들여 볼까요.
반짝반짝 크리스마스 트리
<사진. 1971. 서울 시청 앞 크리스마스트리>
크리스마스를 상징하는 가장 돋보이는 기념물은 바로 크리스마스 트리입니다. 원래는 전나무 등의 침엽수에 반짝이는 장식을 하는 것인데요, 좀 더 높고 큰 트리를 세우기 위해 철탑으로 된 트리도 이용됩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크리스마스 트리는 뭐니 뭐니 해도 서울시청 앞에 서 있는 것입니다. 올해에도 어김없이 반짝이는 트리가 시청 앞에 자리를 했습니다. 지난 달 29일 설치된 서울 시청 트리는 내년 1월 4일까지 있을 예정입니다. 18미터 높이에 20만 개의 전구로 장식돼 있습니다.
시청 트리는 1965년 처음으로 세워졌습니다. 이후 계속 연말마다 모습을 드러낸 이 트리는 1998년부터 2001년까지, 고건 시장 재임 시절 국민의 세금으로 특정 종교의 상징물을 세울 수 없다는 뜻으로 설치되지 않았습니다. 시청 앞 트리엔 특이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꼭대기에 십자가가 달려 있다는 점. 트리 꼭대기엔 보통 별 모양 장식이 달리는데요, 2002년부터 시청 앞 트리에 지금처럼 십자가가 달렸습니다.
분단의 아픔 담긴 애기봉 트리
<사진. 1984. 김포 애기봉에 들어 선 크리스마스 트리>
한국에는 의미 있는 트리가 또 하나 있습니다. 바로 김포의 애기봉 트리입니다. 애기봉 트리엔 분단의 아픔이 담겨 있습니다. 이곳에 트리가 설치된 건 북한과 매우 가깝기 때문입니다. 특히 북한의 경우 전력 사정이 좋지 않아 깜깜하기 그지없는데요, 그렇기에 애기봉에 트리를 밝히면 2,30km 떨어진 개성에서까지 모습이 보입니다.
1964년 처음 설치된 이 트리의 목적은 대북 선전이었습니다. 그렇기에 트리를 켤 때마다 북한에서 민감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2004년에는 제 2차 남북 장성급 군사 회담 합의에 따라 점등을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2010년 연평도 포격 사건을 계기로 다시 불이 켜졌다가, 2011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 한 후 다시 모습을 감췄습니다. 현재엔 트리 철탑이 철거돼 있지만, 통일의 염원이 담긴 트리를 다시 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불거지고 있습니다.
‘우표가 아니예요’ 크리스마스 씰
<사진. 1959. 대한적십자사에서 제작한 크리스마스 씰을 이승만 대통령 내외에 전달하고 있다.>
크리스마스의 상징으로 크리스마스씰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우표처럼 생긴 종이죠. 크리스마스씰은 영국 산업혁명 직후 결핵이 대대적으로 발생한 걸 계기로 만들어졌습니다. 당시 덴마크 코펜하겐의 우체국 직원이던 아이날 홀벨은 결핵 퇴치 기금 마련을 위해 1904년 12월 10일 이 씰을 발행했습니다. 동양의 경우 1910년 필리핀이 최초고 우리나라는 1932년 시작됐습니다.
씰이 한국 전역으로 퍼진 건 1953년 대한결핵협회가 창립된 이후입니다. 이후에는 민간 주도의 결핵 퇴치 운동 재원 마련을 목적으로 매년 발행해오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크리스마스 카드에 씰을 붙여 친구들에 주는 모습, 다들 기억나시나요? 우표와 거의 흡사해 봉투에 씰만 붙여 보냈다 반송되는 웃지못할 일도 종종 있었습니다. 의미도 뜻 깊지만, 씰 자체가 무척 예쁘고 아기자기해 수집용으로 모으는 사람도 많습니다.
<사진. 2007. 루체비스타와 크리스마스 트리>
크리스마스를 전후로 거리에서는 화려한 루체비스타도 볼 수 있습니다. 루체비스타는 빛이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루체’와 광경을 말하는 ‘비스타’가 합쳐진 말입니다. 예전에는 루미나리에라고 불렸지만, 2007년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루체비스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루체비스타는 전구 장식 가득한 장식물을 뜻합니다. 청계천에서는 2004년 이후 매년 루체비스타가 설치돼 도심의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한껏 돋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