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자산을 넘어 자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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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고
  • 2017.08.16 16:04

 

 

이선철 숙명여자대학교 정책산업대학원 겸임교수(감자꽃스튜디오 대표)
이선철 숙명여자대학교 정책산업대학원 겸임교수(감자꽃스튜디오 대표)

우리가 사는 도시나 마을에서는 그동안 유구한 역사를 거쳐 다양한 공간들이 조성되어 왔다. 집이나 일터와 같은 일상 공간에서부터 문화, 복지, 생태, 여가 등을 위한 비일상의 공간까지 공간들은 서로 조화를 이루며 진화해 왔다.

 

이러한 공간들은 인간의 일차적이고 내재적인 욕구 충족을 위한 물리적 자산이자, 희망과 이상을 꿈꾸게 하는 무형의 환경으로도 가치를  발휘하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공간 안에서 다양한 성정을 표출하며 기쁨과 즐거움, 감사와 경탄을 맛보고 동시에 슬픔과 고통의 경험을 갖기도 한다.

 

또한 공간은 지역사회 공동체의 구심점이자 유기적인 주민 생태계의 허브가 되기도 한다. 공동체는 과거 전통사회에서는 혈연, 학연, 지연 등이 계기가 되어 형성되었다면 이제는 문화, 종교, 학습, 생활, 여가, 복지, 나아가 경제 활동까지 다양한 목적을 가지고 생겨난다.

 

심지어 특정한 기업의 브랜드를 중심으로 생기는 공동체가 있는가 하면 온라인 공간에서의 공동체도 활발해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공간은 이러한 다양한 공동체의 구심점으로 진화하고 있으며 개인의 삶을 넘어 사회 활동의 기반으로 더욱 그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다.

 

특히 시민의 전반적 소득 수준이 높아지고, 삶의 질을 중요시하며 문화적 욕구가 많아지면서 이를 충족시키기 위한 문화공간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문화공간은 과거 제왕적 군주제나 봉건귀족 시대에는 권위의 상징이기도 했다.

 

그러나 근대사회를 거치고 전후시대를 지나 이제는 도시의 위상 구축과 이미지 형성, 도시 마케팅의 측면에서 그 가치를 새로이 인정받고 있다. 또 점차 문화가 주민들의 생활과 밀접해지고 참여가 활발해지면서 창의적인 활동과 문화적 연대를 가능케 하는 중요한 인프라로 인식되고 있다.

 

이러한 문화공간은 크게 몇 가지로 대별해 볼 수 있다. 우선 지역의 역사와 정신을 간직하고 있는 유산으로의 공간, 전문적인 창작과 향유를 위한 예술공간, 그리고 주민들이 일상 속에서 스스로 창작하고 체험하며, 때에 따라서는 생산도 가능케 하는 생활문화공간 등이 그것이다.

 

특히 최근에는 생활 속에서 문화의 생산과 소비가 함께 이루어지며 이제는 일상과 비일상의 구분이 무색해지고 있다. 따라서 이제는 문화공간은 단순히 좁은 의미의 예술작품이 생산되고 소비되는 제한된 공간이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모든 문화적 부가가치를 내재하고 있는 활동을  포용하는 공간이라는 포괄적 개념으로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런 공간이 가지는 가장 중요한 덕목은 사람들을 모이게 하는 힘에 있다. 영어로 gathering으로 번역될 수 있는 이 모인다는 의미는, 단순히 집단적으로 한 장소에서 만나 공동의 경험과 사건을 공유하는 것을 넘어, 그 안에서 서로 생각을 주고받고 소통하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시도하고 모인 김에 거기서 무언가 가치있는 체험을 하는 것을 뜻한다. 

 

나아가 사람들은 여기서 얻은 생산과 결과물을 널리널리 알려 공간의 영향력을 키워 나가고 공간을 중심으로 새로운 생태계가 생성되며 끊임없이 공동체를 만들어진다. 그리고 주민들은 그 안에서의 활동을 통해 삶의 자존감을 가지고 지역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며 꿈과 비전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새로이 조성되는 행정안전부의 ‘마을공방 육성사업’은 기존의 문화공간이나 복지공간의 기능에 더해서 지역에서의 일자리 창출과 창업을 위한 공간으로까지 활용되게 함으로 창조적이며 생산적인 새로운 지역사회의 공동체 거점 공간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마을공방’은 공동체의 방, 공공의 방, 공유의 방, 공생의 방 어떤 식으로도 해석될 수 있기에 더 많은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이 공간에서 사람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모이며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나누고 혁신적인 시도를 해보며 단순히 배우고 체험하는 수준을 넘어 생산하고 판매하는 단계까지 가보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활동과 공간은 지역의 전문가와 주민 그리고 지자체가 어우러져 함께 만들어 나가는 것을 전제로 함으로 지역재생과 협치를 실천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른바 명실상부한 복합 커뮤니티 공간인 것이다. 

 

그런데 공간은 때에 따라서 정치적으로 활용되기도 하고 제한된 시설과 기회의 제약으로 그 점유와 활용에 있어서 새로운 권력구조가 생기게 되며 이권과 혜택의 편차로 이전엔 없던 갈등과 분열의 요인이 되기도 한다. 이미 우리는 전국 곳곳에서 공간조성이라는 이름하에 크던 작던 수많은 과욕의 산물을 보아왔다.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만든 각종 시설과 공간들은 적절한 전략이나 운영에 대한 고민없이 일단 짓고 보자는 식으로 만들어져 문을 열자마자 유휴시설로 전락하거나 메가 이벤트의 후유증을 겪는 사례를 수도 없이 보아왔다.

 

지자체나 주민들의 욕심과 이기심에 도덕적 해이가 더해진 결과이다. 전문성이 무시되고 다수의 의견만 반영되는 데서 오는 참담한 결과도 겪었다. 또한 정책의 간판이나 사업명만 바뀐 예산낭비의 결과 또한 적지 않다.

 

따라서 공간의 성공적인 조성과 운영 그리고 마케팅에 있어서 대단히 실체적이고 구체적이며 섬세한 기획과 이에 걸맞는 운영 역량이 반드시 필요하다. 공간의 조성에 있어 독창적인 디자인의 구현과 효율적인 기능의 부여 그리고 적절한 프로그램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전문가가 붙는다고 되는 일도 아니고 주민의 목소리가 크다고 능사가 아니며 공무원이 앞장선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다. 지역주민의 의견이 존중되지만 적절한 전문가의 참여와 행정의 지원이 성공의 요체이다.

 

최근 창조경제, 융복합, 4차산업, 도시재생 등 화려하게 포장된 슬로건들이 일상화 되었지만 실제 이런 비전들이 구현되려면 지역 단위에서 작지만 다양한 공간들이 조성되고 그 안에서 시민들의 자발적인 작은 풀뿌리 활동이 활성화되고 축적되며 확산되어야 한다.

 

이런 활동은 문화와 복지 그리고 나아가 경제적인 측면까지 아우르는 것이 될 때 진정한 지역의 새로운 동력이 될 수 있다.

 

비록 지역기반의 작은 공공 공간들은 처음부터 큰 수익을 내거나 당장에  엄청난 파급력을 발휘하기는 어렵지만 소위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그리고 휴먼웨어가 조화를 이루어 지속적으로 운영될 때 지역의 새로운 동력으로 작동될 것이다. 따라서 이제 공간은 자산(property)이 아니라 자원(resource)의 개념으로 인식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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