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북 ‘중재자’가 ‘북핵 샌드위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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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2019.04.16 22:18
천상기 본지 주필/경기대 초빙교수/ 언론학/한국신문방송편집인클럽 고문
 
트럼프도 김정은도 문 대통령의 중재역을 용도 폐기 했다.
 
“오지랖 넓게 양다리 걸치지 말고 화끈하게 우리 편 돼 개성공단. 금강산 열라 우”  김정은은 문 대통령에게 최후 통첩을 했다.
 
“한반도 운전석’에 앉겠다던 문재인 대통령이 하노이 결렬 이후 본격화된 미-북 정상간의 거센 힘겨루기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빠져들고 있다. 그야말로 ‘북핵 샌드위치’다.
 
미국 워싱턴으로 직접 날아가 제안한 ‘굿 이너프 딜(북-미가 수용할 만한 충분히 좋은 합의)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면전에서 거절한 데 이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으로부터는 “중재자, 촉진자가 아니라 당사자가 돼라”며 남북 경협 추진을 재촉 받았기 때문이다.
 
“비핵화 대화 추진 이후 가장 어려운 상황”이라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조바심이 커지고 있다.
 
김 위원장은 한-미 정상회담이 열린 날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오지랖 넓은 중재자, 촉진자 행세를 할 것이 아니라 민족의 이익을 옹호하는 당사자가 돼라”고 말했다.
 
북-미 중재보다는 평양에서 합의한 9.19 평양공동선언의 후속 조치와 본격적인 남북경협에 나서라고 촉구한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9.19 선언에 담긴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재개에 대해 한미 정상회담에서 “적기가 아니다”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대북 제재는 지금 적정한 수준이며 그대로 유지할 것”이라고 한 뒤 “현 시점에서는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는 빅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청와대 회의에서 “우리 정부는 남북 관계와 북.미관계의 선 순환, 국제사회의 지지와 협력 강화 등 한반도 평화 질서를 만드는 데 책임과 역할을 다하겠다”며 ‘하노이 노 딜’ 이후 우리 정부의 ‘중재자론’은 사실상 미-북 양쪽으로부터 퇴짜를 맞았다.
 
‘오지랖이 넓다’는 것은 ‘앞장서서 주제넘게 간섭한다’고 비아냥대는 말이다. 친한 친구 사이에도 쓰기 힘든 말이다. 김정은이 문 대통령에게 ‘오지랖이 넓다’고 한 것은 우리국민에 대한 모욕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문 대통령은 그런 모욕에 대해서 한마디 언급도 없이 김정은 요구대로 ‘중재자’ 표현을 빼고 ‘한반도 운명의 주인’ 역할을 하겠다고 했다. 그 동안 김정은의 ‘서울 답방’ 을 장담하더니 이제는 “북의 여건이 되는대로 장소와 형식에 구애 받지 않고 남북정상회담을 하겠다”고도 했다.
 
김정은은 “국가와 인민의 근본 이익과 관련된 문제에서는 티끌만 한 양보나 타협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북의 ‘근본 이익과 관련된 문제’는 핵 보유다. 트럼프 대통령이 하노이 회담에서 요구했던 북핵의 완전 폐기는 절대 받아드리지 않겠다는 것이다.
 
영변 핵 시설 해체와 대북 제재 사실상의 전면 해제를 맞바꾸자는 자신의 ‘가짜 비핵화’ 카드를 트럼프 대통령이 받아드리도록 설득하라는 주문이다. 대한민국은 북 핵의 최대 피해 당사자다.
 
문 대통령은 북 핵 폐기를 위해 전력을 다 해야 한다. 막연한 ‘희망 사고’를 버리고 냉철하고 정확한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최선에 올인 해야 한다. 무엇보다 국내 정치적 이유 때문에 북핵 외교문제를 다루지 말아야 한다. 남북 이벤트에 다음 총선 대선 승패가 달려 있다는 강박관념 때문은 아닐까.
 
김정은은 연말까지 대화 창구는 열어 두겠다고 했고, 트럼프 대통령도 “김 위원장과의 관계는 훌륭하다”며 호응했다. 결국 미-북이 각자 입장은 분명히 하면서도 대화의 끈은 살려놓은 것이다.
 
하지만 미-북이 비핵화의 개념에 대해서도 생각이 전혀 다른 상태에서 설령 대화가 복원된다 해도 의미 있는 진전은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청와대는 대북 특사를 통해 남북 대화의 불씨를 살려보겠다는 구상이다.
 
이를 토대로 남북정상회담은 물론 미-북, 남북미 정상회담까지 이어가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비핵화 진행에 대한 ‘새로운 계산법’을 내놓지 못한다면 ‘ 회담 피로증’만 생기고 톱다운 방식의 효용성이 점점 약해질 수 있다.
 
문 대통령은 무조건 대화를 복원시켜야 한다는 조급증에 빠져선 안 된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공조를 바탕으로 비핵화를 압박하면서 한편으로는 남북 간 실무 접촉을 통해 회담의 의제와 접점을 면밀히 점검해야 한다. 설익은 상태에서 정상 간  톱다운 담판에 넘겨버리는 어설픈 회담 방식이 되풀이돼선 안 된다.
 
김정은의 연설엔 궁지에 몰린 스스로의 처지를 눈속임하려는 허세가 곳곳에서 발견된다. 2017년부터 실질적으로 북을 옥죄기 시작한 제재 효과가 1~2년 더 지속되면 북으로 하여금 진짜 비핵화를 결심하도록 만들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갖게 한다.
 
지금은 ‘북핵 샌드위치’인 우리가 어설픈 중재자, 촉진자 역할을 하겠다며 대북 압박 전선을 흐트러뜨릴 때가 아니다.
 
 sk1025@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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