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호가 표류하고 있다. 성난 승객들은 선장실 앞에서 퇴진을 요구하며 농성 중이고 선장은 선장실에 모습을 숨긴 지 벌써 몇 달이 지났다.
4년 전 대한민국호는 ‘박근혜호’로 새 깃발을 달고 출항했다. 목적지는 ‘선진화’였고 항해경로는 ‘창조경제와 문화융성’이었다.
그런데 선장 박근혜는 출항하자마자 방향키를 항해사 자격도 없는 일개 승객에게 맡기고 선장실에 들어앉았다.
그 사이 조타실을 점령한 그 승객과 친지들은 선식과 부자재를 빼돌리는 데 여념이 없었고 배는 4년 동안 변변한 파고 하나도 넘지 못한 채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다.
이것이 박근혜호의 지난 4년간의 참담한 ‘항해일지’다.
지난주 박근혜 대통령의 제3차 대국민 담화 발표가 있었다. 160만개의 성난 촛불민심이 다시금 청와대를 에워싼 후였다.
거기에는 개인적인 변명과 대국민 사과도 담겼으나 아무래도 핵심은 “대통령직 임기 단축을 포함한 진퇴 문제를 국회의 결정에 맡기겠다”는 선언일 것이다.
이를 두고 언론은 박 대통령의 진의에 대한 온갖 정치적 해석을 쏟아냈고 정치권에서는 나름대로 자신들의 정치적 유·불리를 따지는 부산스러움이 이어졌다.
과연 이것이 본인 말대로 ‘국정의 혼란’을 막기 위한 우국충정에서 나온 진심일까, 아니면 야권분열을 통해 탄핵을 모면해보고자 하는 고도의 정치적 꼼수일까.
필자는 전자일 것으로 믿고 싶다. 그러나 후자였다면 나름 성공적이라 볼 수도 있겠다.
이후 국회에서의 탄핵의결은 미뤄졌고 그 통과 가능성마저도 불투명해졌으니까. 그동안 오만과 불통으로 정치력 부재를 보여온 이 정권이 어쩌면 출범 이후 최초로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그나마 정치다운 수를 둔 것으로 보인다.
훨씬 더 건설적인 사안에서 이 같은 능력이나마 진즉에 보였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사실 대통령의 진의가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대통령의 진의에 상관없이 이를 어떤 방향으로 현실화시키는가는 오롯이 국회를 비롯한 정치권의 몫이자 그들의 능력에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이 정부가 보인 오만과 무능만으로도 대통령의 퇴진 사유는 충분하다고 본다.
탄핵이면 어떻고 또 질서 있는 퇴진이면 어떤가. 대통령과 그 뒤에서 호가호위하던 집단들의 불법은 추후 특검을 통해 철저히 밝히고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하면 된다.
대한민국호의 이번 항해는 4년 전 출항 때부터 이미 결코 순탄하지 않을 것임이 충분히 예견되고 있었다.
대외적으로는 불경기로 인해 세계 각국이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하는 추세였고 대내적으로는 ‘국회 선진화법’이다 뭐다 해서 국민적 합의가 도출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더욱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중국의 지역 패권주의 강화 움직임 등으로 인해 앞으로 닥칠 파고는 상상 이상일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호는 순전히 대통령의 무능으로 인해 항해다운 항해 한 번 못한 채 좌초된 상태다.
중요한 것은 이처럼 무능한 대통령을 하루속히 물러나게 하고 정국을 안정되게 추슬러 다가올 거친 파고들에 대비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치권은 잠시만이라도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 앞에 국민을 두고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이번 정부는 근래 최악의 정부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아니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안 그러면 우리 모두는 분명 역사의 죄인으로 후세에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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