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에너지전환 현장] ‘환경수도’ 프라이부르크·성 페터 바이오에너지마을
독일은 2000년 사민당-녹색당 연립정부에 의해 원자력발전소(원전) 폐쇄정책을 결정할 당시 원자력용량 측면에서 세계 4위의 원전 대국이었다.
2011년 연방정부의 결정에 따라, 향후 5년 뒤 2022년까지 독일에서 운영 중인 모든 원전이 폐쇄될 예정이다.
불과 20여년 만에 세계 4위의 원전 이용 국가에서 ‘원전 제로(0)’ 국가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원자력 없는 에너지공급시스템은 어떻게 가능할까? 독일의 ‘환경수도’이자 세계적인 ‘녹색도시’ 프라이부르크(Freiburg) 시와 성페터(St.Peter) 바이오에너지마을 사례를 통해 에너지전환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김수진 고려대 BK21플러스 BEF경제사업팀 연구교수 |
지리적으로 독일 남서쪽에 위치한 프라이부르크는 따뜻하고 일조량이 풍부하여 독일에서 ‘태양의 도시’로 잘 알려져 있다.
여기에 태양에너지 관련 연구, 산업, 정책, 국제회의 및 박람회 개최 등으로 명실상부한 ‘태양에너지의 도시’로 국제적 명성을 획득하고 있다.
1970년대 중반 프라이부르크 근교 빌(Wyhl)에서 일어난 반핵운동을 계기로 프라이부르크에서는 반핵시민단체, 학생, 신사회운동 옹호자, 전통적인 가치를 중시하는 시민 등 다양한 구성원들이 이른바 반핵전선을 형성하였고, 이후 반핵환경운동의 가치가 이 지역의 정치사회문화에 깊이 뿌리내리게 되었다.
1970년대 반핵운동으로 대안에너지를 확대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전개되었고, 그 일환으로 독립적인 대안 연구소인 ‘생태연구소(Öko-Institut)’가 1977년 프라이부르크에 설립됐다.
생태연구소는 에너지전환을 위한 시나리오 분석 등 다양한 연구 활동을 통해 독일 사회에 재생에너지에 기초한 지속가능한 에너지시스템으로의 전환이 가능하다는 것을 학문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또 1981년 20여명의 연구자로 시작하여 현재 1100여명이 근무하는 유럽에서 가장 큰 태양에너지 연구소로 성장한 프라운호퍼 태양에너지시스템 연구소(Fraunhofer-Institut für Solare Energiesysteme)도 이 지역에 자리 잡고 있으며, 2007년 프라이부르크 대학교에는 재생에너지 국제석사과정이 신설되었다.
무엇보다 프라이부르크는 태양광 건축가 롤프 디쉬(Rolf Disch)에 의해 설계된 ‘잉여하우스’, 보봉(Vauban)의 패시브하우스(Passivhaus) 주거단지 등으로 독일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태양에너지를 활용하는 도시 중 하나로 발전했다.
프라이부르크 시는 태양광발전을 이용하는 차원을 넘어 환경정책과 도시계획을 통합하고, 자전거 이용을 증대시키는 친환경 교통정책을 수립하고, 생태적 주거단지를 조성하여 지속가능한 녹색도시를 추구하고 있다.
1996년 프라이부르크 시는 처음으로 기후보호개념을 의결했다. 화석연료에서 탈피하기 위해 에너지효율(Effizienz), 재생가능에너지(Erneuerbare Energien), 그리고 에너지절약(Einsparen) 등 세 가지 주된 에너지 ‘E-전략’을 수립했다.
‘E-전략’을 구체화시키는 대표적인 사례로 ‘저에너지하우스 기준(Niedrigenergiehaus-Standard)’를 들 수 있다. 즉 신규 건축물은 독일연방차원에서 적용되는 에너지 소비 기준보다 최소 30% 더 적게 에너지를 소비하도록 규정한 것이다.
독일 최초 에너지 자급자족 솔라하우스(왼쪽)와 프라우언호프 태양에너지시스템 연구소. (사진=www.freiburg.de) |
처음에는 건축업체들이 새로운 건축에너지효율 기준에 대해 불만을 제기했는데, 이제는 에너지효율 개선비용뿐만 아니라 건물의 난방비용도 감소하여 건축업체들은 건물의 에너지절감 효과를 적극적으로 광고하고 있다.
1990년대 도입된 저에너지하우스인증과 더불어 2011년에는 신규 주택에 ‘프라이부르크 에너지효율주택-기준55’를 적용하는 규정을 마련했다. 이것은 독일연방의 2014년 에너지절약규정(EnEV: Energieeinsparverordnung)에서 요구하는 주택의 1차 에너지 소비량의 55%에 해당한다.
또 노후화된 건물에 대해서는 시의 보조금을 투입하여 에너지효율성을 향상시키는 건물수리를 추진하고 있으며, 저소득 가정에는 무료로 에너지컨설팅을 실시하고 있다.
프라이부르크 시는 205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이 없는 이른바 ‘기후중립도시’를 추구하며, 중기적으로는 2030년까지 1992년 대비 이산화탄소 50% 감축 목표를 수립했다. 2012년에는 1992년 대비 이산화탄소를 20.7%p 감축했다.
2015년 재생에너지 전력생산량은 76.7GWh이며 이중 태양광발전이 약 46.6%를 차지한다. 태양광발전 전력생산량은 2008년 약 9.7GWh에서 2015년 약 35.7GWh로 연간 증가율이 20%에 달한다.
바데노바 경기장 지붕에 설치된 태양광 발전시설.(사진=www.freiburg.de) |
교통부문에서도 지속적으로 이산화탄소배출이 감소하고 있다.
1992년과 비교할 때 2012년 이 부문에서 이산화탄소 배출이 10.4%p 감소했다.
이는 시의 적극적인 환경 친화적 교통정책으로 대중교통 이용객이 늘었을 뿐만 아니라 자전거교통량도 지속적으로 증가한 덕분이다.
프라이부르크 시의 태양도시계획이 가장 돋보이는 곳은 보봉(Vauban) 지구이다. 이 지역은 프랑스 병영이 있던 곳으로 1992년 프랑스군이 철수한 이후 프라이부르크 시의 도시계획 아이디어 공모전을 통해 태양 주거단지로 거듭났다.
당시 공모전에서 당선된 보봉 지구 계획안은 프라이부르크 시가 추구하는 녹색도시의 비전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일자리와 주거공간의 조화, 보행자, 자전거이용자 및 대중교통수단을 우선하는 도로계획, 사회적 그룹과의 조화, 공공용지(또는 빈터) 확보, 오래된 나무 보존, 근거리난방열공급설비 구축, 주택의 저에너지건물인증 의무화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계획에 따라 41㏊의 보봉 지구에는 약 5500명의 시민들이 거주하며 가족 친화적이고 환경 친화적인 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다. 오래된 나무를 보존하여 조성된 녹지는 기온을 조절하는 데 기여하고 아이들에게는 놀이공간을 제공한다.
2006년부터 노면전차가 연결되어 많은 사람들이 자동차를 포기하고 대중교통과 자전거를 이용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보봉 지구에는 자동차가 없는 가구가 많다.
보봉 지구에는 개인 자동차 이용을 줄이고 거주 환경을 쾌적하게 유지하기 위해 개인적인 주차공간이 없다. 차를 소유한 사람들은 이 지구에 있는 두 개의 주차장(약 470개의 주차 공간이 마련되어 있음)에서 주차공간을 구매해야 한다.
방문객들을 위해 자동차 200대를 주차할 수 있는 공공주차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개인 차량이 획기적으로 줄어든 이곳에는 차량 소음이 줄어든 대신 보행자 및 자전거 통행 공간과 아이들을 위한 안전한 놀이공간이 늘어났다.
보봉 지구에는 저에너지건물뿐만 아니라 패시브하우스, 잉여에너지하우스, 태양광설비 등이 보편화되어 있다. 프라이부르크 시는 건물에너지 소비량이 65kWh/㎡ 이하인 경우에 저에너지건물로 인증한다. 패시브하우스는 겨울 별도의 난방설비 없이 연간 건물에너지 소비량이 15kWh/㎡ 이하여야 한다.
보봉 지구에는 270여개의 건물이 패시브하우스 인증을 받았다. 또 소비되는 에너지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생산하는 잉여에너지하우스 단지도 있다. 우드칩을 연료로 사용하는 구역형열병합발전소에서 이 지역에 열을 공급하고 있다.
열병합발전소에서는 전력도 생산하는 데 여기에서 생산된 전기를 약 700 가구에 공급하고 있다.
빌머스도르프 거리 아파트건물의 솔라외벽.(사진=www.freiburg.de) |
인구 20만 이상의 도시 프라이부르크에서 교통계획, 생태주거단지, 건축물의 에너지효율 인증제도 등을 통해서 녹색도시를 추구하고 있다면, 프라이부르크에서 20km 정도 떨어진 흑림(Schwarzwald)에 위치한 인구 2500명의 성페터 마을은 농촌의 마을단위에서 재생에너지원을 이용해 어떻게 에너지자립이 가능한지를 보여준다.
독일의 몇 개 주에서 바이오에너지 마을을 조성하는 프로젝트를 시행한 바 있는데, 바덴-뷔르템베르크 주는 2009년 바이오에너지마을에 대한 규정을 만든 이후 2020년까지 100개의 바이오에너지마을 조성을 목표로 이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현재 67개의 마을이 바이오에너지마을로 선정됐다.
바이오에너지마을은 지역의 바이오매스를 주로 이용하여 전기 및 열 수요의 상당 부분을 충족시켜야 한다. 바이오에너지마을은 마을에서 필요한 전기를 생산하고, 필요한 열의 최소 절반을 바이오매스를 이용해 생산하되 가능하면 열병합발전을 이용하며, 마을의 열 소비자와 농부들이 열 생산설비의 지분을 50% 이상 소유한다.
성페터 마을은 2011년 1월 11일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의 16번째 바이오에너지마을(Bioenergiedorf)로 선정됐으며, 바이오에너지마을 프로젝트는 성페터 시민에너지조합(Bürger Energie St. Peter eG)에서 추진됐다. 성페터 시민에너지조합은 조각가이며 예술가인 다니엘 뢰쉬(Daniel Rösch)의 주도로 시작된 시민행동그룹에서 탄생했다.
2009년 8월 11명에서 시작하여 2015년에는 조합원이 235명에 이른다. 시민에너지조합은 열 생산설비 및 열병합발전소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주체로 설비를 건설하고 운영한다. 열 생산설비 및 열병합발전소에서는 지역에서 구할 수 있는 목재 바이오매스 자원을 사용한다.
목재 연료는 기후중립적인 재생자원이다. 목재 연료를 태우는 동안 이산화탄소가 방출되지만 나무가 자라는 동안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기 때문이다. 목재 연료를 이용한 지역난방을 통해 성페터 마을은 연간 약 3500톤의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고 있다. 이 지역난방으로 마을의 220가구에 열을 공급한다. 즉 지역난방이 개별난방에 따른 220개의 굴뚝을 대체한 것이다.
(사진=www.st-peter.eu) |
개별 가정의 굴뚝에는 여과장치가 갖추어져 있지 않아 미세먼지를 배출하지만 지역난방설비는 현대화된 전기필터장치를 통해 미세먼지를 걸러내고 배출가스를 내보내고 있다. 지역의 바이오매스 자원을 이용함으로써 연간 약 90만 리터의 난방유를 대체하여 화석연료 의존도를 줄이는데도 기여하고 있다.
과거 흑림 지역에서 전통적으로 지역의 자원을 이용하여 에너지를 공급했듯이 에너지공급을 다시 지역화시킴으로써 석유와 가스 등 에너지자원을 위해 지역의 돈이 외부로 유출되는 것을 줄이고 지역에서 부가가치를 창출하여 지역 주민들에게 투자수익으로 환원한다.
무엇보다 지역 바이오매스를 이용한 지속가능한 에너지경제시스템은 지역의 농업과 임업을 유지하고 마을 공동체를 유지하는 데 기여한다. 마을 공동체의 지속가능한 유지를 위해 성페터 에너지시민조합은 마을에서 추진되는 사회문화 프로젝트도 후원하고 있다.
루돌프 슐러 시장에게 전달된 바이오에너지 마을 현판. (사진=www.st-peter.eu) |
성페터 마을은 마을에 필요한 전기와 열을 대부분 생산하는 에너지자급자족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성페터 마을의 연간 전기소비량은 700만㎾h지만 전기 생산량은 2100만㎾h에 이른다. 연간 열 생산량은 9600㎿h로 열 소비량(12000㎿h)의 80%를 지역에서 공급하고 있다.
성페터 마을의 많은 농가는 태양열설비와 태양광설비를 갖추고 있다.
2014년 기준으로 태양광 설비용량은 1200㎾이며 여기에서 연간 118만㎾h의 전기를 생산한다. 또 6개의 풍력터빈과 5개의 소수력발전소를 통해 각각 연간 1840만㎾h와 4만㎾h의 전기를 생산한다.
우드칩을 연료로 사용하는 지역난방설비의 용량은 1700㎾이며 여기에서 연간 7500㎿h의 열을 생산한다. 목재팰렛을 이용한 구역형열병합발전소에서는 연간 2100㎿h의 열을 생산하고 140만㎾h의 전력을 생산한다.
이외에도 4만㎾ 용량의 태양집열판에서도 열을 생산하며, 첨두부하용 석유보일러(920㎾ 1기)와 비상용보일러(1750㎾ 1기)를 갖추고 있다.
독일의 프라이부르크 시와 성페터 마을의 사례는 에너지전환이 에너지공급설비의 기술적 전환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중앙 집중적인 에너지원인 화석연료와 원자력발전에서 탈피하여 지역 특성에 기반한 분산적인 재생에너지원을 이용함으로써 지역의 에너지공급 문제에 있어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고 자연과 조화되는 생활환경을 조성하며 공동체를 형성, 발전시키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즉 에너지전환은 우리 삶의 양식 전반에 걸친 민주적, 생태적 전환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