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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문전자 감꽃 목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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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일반
  • 2023.03.18 03:10
 
자그마한 여자아이가 눈가의 졸음을 쫒으며 구멍 난 창호문 사이로 졸린 눈망울을 바짝 갖다 댄다. 마당에 깔린 어둠을 지나 깊어가는 동구 밖 으스름 달빛을 바라본다. 아이의 마음은 벌써 싸리문을 열고 동구 밖을 지나고 있다. 아이는 잠시 눈을 지그시 감고는 졸음을 못 참고는 듯 연신 작은 손 등으로 눈을 비비며 이제나 저제나 초초한 듯 깊어지고 있는 어둠을 참고 기다린다.
 
여자아이는 잠시 조는듯하다 문풍지 사이로 스치는 바람결에 깜짝 놀라 고개를 든다. 두툼한 이불을 가만히 들 추고는 삐거덕 거리는 방문을 밀치며 밖을 한 참 바라보더니, 이제 됐다는 듯 함께 이불 밑에서 잠들어 있는 식구들 틈새로 웅크리고 있는 꼬마 동생을 흔들어 깨우자“응 응”거리며 귀찮다는 듯이 일어나지 않는 동생의 입을 작은 손으로 급히 막으며 자그마한 목소리로“경자야”하며 흔들어 깨운다.
 
여자아이는 동생과 마당 앞 싸리문 밖 까지 조용히 발소리를 죽이며 사뿐히 걷는다.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있는 동구를 지나니 짖은 어두움이 드리운 천관산 자락의 틈새로 아주 가느다란 달빛이 여자 애들의 가는 길을 슬며시 따라 간다.
 
집에서 그리 머지않은 천관산 입구 작은 동산에는 차가운 바람이 아이들의 얼굴을 때리기도 하고 바람 소리는 무서운 호랑이 소리 같기도 하여 여자아이와 여동생은 깜짝 깜짝 놀라며 서로 부둥켜 않는다.
 
아이들은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저만치 보일 듯 안보일 듯 하는 시꺼먼 나무그늘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얼굴을 드리우는 달님의 모습에 안심 하였다는 듯이 커다란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동산 입구를 향하여 종종 걸음을 재촉한다.
 
작은 동산 산자락 입구에 다다르자 감나무에 걸린 감꽃들이 달빛을 받아 눈 같이 하얗게 빛나 주변의 어둠을 온통 삼키었는지 더욱 하얗게 물들어 훤한 대낮 같이 밝게 해 주었다. 여자아이는 어린 동생에게 “와-아” 하며 감탄사를 길에 뱉고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그렇게 선체로 한동안 주변을 둘러보더니 어린 동생의 손을 꼭 잡고는 너무 기뻐 주변을 뛰기 시작한다.
 
이때 갑자기 호랑이 울음소리 같은 세 찬 밤바람이 불기 시작 하자 떨어진 감꽃들이 뒤엉키며 아이들의 얼굴을 때리기 시작한다. 그러자 동생 아이가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었는지
“언니 나 무서워 집에 가자.”
하며 여자아이에게 다가가 손을 잡으며 얼굴에 울음을 머금은 채 보채기 시작한다. 여자아이는 순간 더 무서웠지만 꾹 참고는
“경자야 그래 알았어.”
하며 동생의 손을 꼭 잡자 더욱 더 거세진 바람이 얼굴을 더욱 세게 때리기 시작하고 감나무도 비틀거리며 울기 시작하자 감꽃이“우수수 우수수”하며 감나무에서 빗방울이 떨어지듯이 한꺼번에 떨어지기 시작한다.
 
여자아이는 어린 동생의 손을 꼬옥 잡으며
“경자야 지금 떨어진 깨끗한 감꽃만 빨리 담고 집에 가자.”
하며 동생을 재촉하고는 방금 떨어지기 시작하는 감꽃만을 골라 치마와 미리 준비하여간 작은 소쿠리에 재빠르게 담기 시작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꼬마 여자아이와 어린 동생의 치마와 소쿠리에는 하얀 감꽃이 가득히 쌓였다.
 
얼마나 지났을까, 꼬마 여자아이는 다 되었다는 듯이 이만하면 됐으니 빨리 집에 가자며 어린 동생과 치마를 움켜잡고는 동구 밖 건너에 보이는 집이 있는 방향을 향해 달리기 시작하였고 등 뒤에서는 계속하여 호랑이 울음소리 같은 더욱 거세진 바람이 이들의 등을 두드린다.
 
꼬마아이와 동생이 매우 조심스럽게 싸리문을 살며시 밀고 들어온다. 마침 마루 밑에서 집을 지키던 복실 강아지가 꼬리를 살살치며 반기자 꼬마아이는 쉿- 검지를 입술에 갖다 대자 복실이는 알았다는 듯이 쬐그마한 목을 움츠린다. 여자아이 와 동생은 발자욱 소리를 죽이려고 뒤꿈치를 들고 뒤꼍 골방으로 슬그머니 들어갔다.
 
문풍지 위로 햇살이 살짝 고개를 내밀기 시작하는데 골방 한 귀퉁이에서는 꼬마 여자애가 방안 가득히 코끝을 찌르는 감꽃 향기에 취하며 감꽃을 바늘로 꿰고 있다. 밤새 잠을 한숨도 못 자고 연신 하품을 하며 감꽃을 실에 꿰며 감꽃 목걸이를 만들어서, 옆에는 한 무더기의 감꽃 목걸이가 쌓여있었다.
 
여자아이는 가느다란 목을 흔들며 연신 눈꺼풀을 짓누르는 잠을 쫓으며 마지막까지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 드디어 감꽃목걸이가 다 되었는지 옆에서 웅크리고 잠들어 있는 어린 동생을 깨운다.
“경자야 일어나 다 됐어.”
부르는 소리에 부스스 눈을 비비고 잠에서 깬 동생은
“언니 다 됐어?”
하며 커다란 하품을 내 쉰다. 여자아이와 동생은 모두가 잠들어 있는 안방 문을 살며시 열고 들어가 다른 식구들을 깨우지 않으려고 문지방 옆에서 살며시 잠에 취해 버린다. 얼마가 지났는지 엄마가
“전자야 경자야, 이년들이 또 늦잠이야, 밥 먹어.”
소리치는 엄마의 목소리를 듣고 꼬마 여자애들은 부스스 눈을 뜬다. 여자 아이와 동생은 식구 모두가 둘러 않아 즐겁게 식사를 하는 중간에도 연신 방 한구석 재봉틀 뒤에 숨겨놓은 감꽃 목걸이가 있는 재봉틀 뒤와 문밖을 번갈아 바라보며 밥을 먹은 둥 마는 둥 하자 엄마는
“이년들이 아침부터 밥 안쳐 먹고 어디를 쳐다봐”
하시며 야단을 친다.
 
어젯밤 세찬 바람은 어디로 숨었는지 앞마당은 온통 따뜻한 햇살이 마당 한 복판에 우뚝 서서 꼬마 여자애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언니는 감꽃 5줄을 어린 동생을 감꽃 3줄을 발목까지 늘어지게 목에 치렁치렁 걸자 감꽃 목걸이에서 곧 은방울 소리가 나는듯하다.
 
동네 장터를 지난 운동장은 10여분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여자아이 둘이는 장터 앞 운동장을 향하고 목에 걸린 감꽃은 싱그러운 아침햇살을 받아 노랗고 하얀 빛이 더욱 빤짝인다. 아이들은 감꽃 목걸이를 자랑스럽게 걸고 힘차게 걸어가고 있었다.
 
멀리 보이는 운동장에서는 이른 아침부터 일찍 나온 동네 애들이 삼삼오오 모여 놀이에 여념이 없어 보인다. 여자 애들은 주로 줄넘기, 단추 따먹기, 핀 따먹기, 땅따먹기를 하고, 남자애들은 비석치기, 자치기, 딱지치기 등 놀이를 하며 분주하게 이곳저곳 에서 소리를 지르고“애자야, 경석아”하는 등 서로 이름을 부르고 달리고 뛰고 하며 정신없이 놀고 있었다.
 
‘전자와 경자’ 두 꼬마 아이들이 목에 감꽃을 주렁주렁 걸고 자랑스럽게 동네 애들이 놀고 있는 한 복판으로 걸음을 옮겨 놓아도 누구 하나 이들을 거들떠보지 않는다. 모두가 놀이에 정신이 팔려서인가보다. 조금 후 줄넘기를 하던 한 여자 아이가 소리를 지른다.
“전자야 너 감 꽃 어디서 났니. 너희 집엔 감나무가 없잖아.”
하며 감꽃을 목에 치렁치렁 두른 두 아이들을 향하여 다가오자, 주변에 있던 모든 애들이 갑자기
모두 하던 놀이를 멈추고 쳐다보며 이들 꼬마 여자아이들 주변으로 삼삼오오 모여든다.
 
이런 주변 아이들의 갑작스런 행동에 두 꼬마 여자아이들은 동네 아이들로부터 자기들이 주목을 받는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고는 더욱 더 신이 나서 양 어깨를 더욱 더 흔들고 고개를 끄떡이고, 아침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반짝이는 감꽃 목걸이를 손으로 쓰다듬고는 애들이 놀고 있는 가운데로 힘차게 걸음을 옮긴다. 전자와 경자는 동네 아이들의 물음에 일절 답하지 않고 있지만 걷고 있는 걸음걸음과 으쓱이는 두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가 있다.
 
동네 애들이 놀고 있는 운동장 한가운데를 걷는 두 여자아이들은 걸음걸이도 당당하게 목에 걸려있는 감꽃을 조그마한 손으로 뜯어 입에 가득히 한 움큼 집어넣으니 그 어느 때보다 달콤한 향내가 입안 가득히 번진다. 그 동안 감꽃을 조금 얻어먹으려고 부단히 동네 아이들을 쫓아다니며 부러워했던 설움을 한꺼번에 날리며 모처럼 입가에는 밝은 미소가 흐른다. 마치 온 세상이 내 것인 양‘전자와 경자’는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라라라 룰룰루”
두 꼬마 아이들은 모처럼 가벼운 발걸음을 재촉하며 관산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엄마의 쌀가게를 향하여 걸어간다.
“전자야 오늘 무슨 좋은 일 있냐?”
멀리서 엄마의 살가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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