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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병과의 싸움에서 이번에도 승리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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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2015.07.01 07:53
채정호 대한정신건강재단 재난정신건강위원장(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메르스 최전선의 모든 의료인에게 감사의 박수를
 
전쟁은 심리입니다. 물리적인 군사력에 비해서 이길 수 있다는 사기가 승리에 더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전쟁에 임하는 군인들의 마음가짐을 보면 그 결과를 알 수 있습니다.
 
전쟁 중에 최전방에서 싸우고 있는 군인들이 전장이 무서워서 도망간다면 그 전쟁의 결과는 뻔할 것입니다. 임진왜란 때 초반의 그 처절한 패배는 조정부터 말단 군인까지 사자를 본 토끼처럼 압도적인 왜군의 숫자에 밀려 도주에 도주를 거듭했기 때문입니다.
 
피난민들에 섞여서 수많은 군인들이 도망가 버린 월남은 외국의 엄청난 지원에도 불구하고 패망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반면에 영화 300으로 유명해진 그리스의 테르모필레 전투에서는 거의 200만명에 달하는 대군을 끌고 침투하는 페르시아에 대항해서 300명의 스파르타 군인들이 협곡에서 무려 이레 동안이나 항전하는데 성공했습니다.
 
만약 내부의 배신이 없었다면 거의 막아낼 뻔하기도 하였습니다. 비록 모두 몰살당하기는 했지만 결국 이들의 용맹이 전해지고 그 사이에 그리스 연합군은 전열을 정비하였고 결국 나중에 살라미스 해전에서 승리를 거두어 페르시아를 격퇴시켜서 종국적으로는 전쟁에게 이기게 한 것입니다.
 
메르스와의 전쟁에 임하는 군인들 마음가짐 보면 결과 알 수 있어
 
1차 세계대전 전까지는 역사상 가장 많은 대군을 동원했을 것이라는 수나라 양제의 대규모 원정에도 성을 굳게 지켜내며 엄청난 대승을 이끌어 낸 고구려의 사례를 보면 아무리 숫자가 적어도 이길 수 있다는 의지와 자신감을 가진 국가나 집단은 결코 호락호락 패배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모든 감염병이 그렇듯이 이번 중동호흡기증후군, 즉 메르스와도 큰 전쟁을 치르는 것과 같습니다. 사실 인류는 그동안 이런 감염병과의 일전을 끊임없이 거치면서 생존해 왔습니다. 중세의 페스트는 유럽 인구 1/3의 목숨을 뺐었다고 하고 1918 년 스페인 독감은 무려 5000만명의 목숨을 앗아갔었습니다.
 
그렇지만 의학은 감염병과의 전쟁에서 위대한 승리를 이어왔습니다. 초반에 당하기는 했었지만 피하고 도망가지만은 않았습니다. 병의 원인도 밝혀내고 항체도 만들고 예방주사도 만들어내고 특효약과 치료방법도 개발해 왔습니다. 이번에도 그럴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2003년 사스라는 강한 적이 쳐들어올 것이라는 정보를 미리 알 수 있어 잘 준비해서, 즉 준비된 전쟁이었기에 비교적 잘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전혀 준비하지 못하고 있다가 일격을 당한 셈입니다. 허둥지둥대고 여기저기서 타격을 입었습니다. 하지만 이대로 계속 패배하여 버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의료인은 최전방 전투 중인 군인…전쟁 무섭다고 적 앞에 두고 도망갈 수 없어
 
의료인들도 사람입니다. 감염병, 특히 전염성이 높은 병의 환자를 진료할 때 당연히 겁이 날 수 밖에 없습니다. 하고 싶지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가까이서 지내다보면 당연히 감염의 우려가 높아질 수 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이번 메르스에서도 확진자 중의 10% 이상이 의료인이라고 합니다. 내가 감염되어 내 사랑하는 가족에게 옮기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듭니다.
 
그렇지만 아픈 환자들을 놓아 두고 병원에서 도망갈 수는 없습니다. 그들이 기침하며 가래가 튈 때 그 가래를 누군가는 뽑아주어야 하고 숨을 쉴 수 있도록 기도를 확보해주어야 합니다. 열나는 것도 어루만져 주어야 합니다. 필요한 약과 주사도 주어야 하고 검사나 조치도 취해주어야 합니다.
 
병원에서 근무한다고 중동에서 온 낙타 취급을 하며 사람들이 만나는 것을 꺼려하고 의료인의 자녀라고 아이들이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져도 그 일을 멈출 수는 없습니다. 지금은 전쟁 중이고 의료인들은 최전방에서 전투 중인 군인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럴 생각도 없고 그렇게 한 적도 없지만 이 전쟁이 무섭다고 적을 앞에 두고 도망갈 수 없습니다.
 
설사 의료인들을 피하고 따돌림을 주도하던 사람들이 환자로 오게 되더라도 그들을 위해서 그들이 나아질 때까지 옆에서 그들을 돌 볼 사람이 의료인들 밖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히포크라테스의 선서에는 가장 중요한 구절이 있습니다. “나의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노라.”
 
의학, 감염병과의 전쟁에서 위대한 승리 이어와…이번에도 그럴 것
 
그래서 그러면 안되는 것이 분명하지만 환자가 생명을 잃을 것 같은 순간에는 심폐소생술을 하다가 방호복이 너무 거추장스러워서 제대로 되는 것 같지 않으면 옷을 벗어버리고서도 달려들 수 밖에 없는 본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의료인입니다.
 
이것은 대단한 사명감이나 의무감도 아닙니다. 그냥 그렇게 훈련을 받았고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또 그렇게 사는 것 이외에는 다른 방법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병원 내 감염 관리에 대해서 우려도 많고 시스템도 바꾸어야 하고 관습도 바뀌어야 한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의료인들은 병원을 지켜낼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 이외에는 메르스든 어떤 감염병이든 또 어떤 질환이라도 그 병을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떻튼 내일도 병원으로 출근하는 우리 모든 의료인에게 진심으로 깊은 감사의 박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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