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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없는 ‘유감’표명 성과와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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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 2015.09.22 11:59
천상기 경기대 초빙교수/언론학/한국신문방송편집인클럽 고문
 
남북이 남북대화를 이끌어낸 8.25전격합의에 긴장이 완화되고 있는 것은 다행이다. 하지만 북이 합의를 실천하기 전까지는 속단해서는 안 된다.
 
북한 측 대표였던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은 평양에 돌아가자마자 조선중앙TV에 출연해 “이번 긴급접촉을 통해 남조선당국이 심각한 교훈을 찾게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 내부용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사태를 심각하게 호도하는 망언이다. 이러니 북은 최종적으로 이뤄지는 실제 행동을 보고 판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지뢰 폭발로 남측 군인들이 부상을 당한 것’에 대해 북이 유감을 표명한 것을 두고 도발을 시인하고 사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느냐고 의문을 제기한다.
 
합의문 문맥상으로 보면 북의 유감표명이 마치 제3자가 병문안 하는 것 같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황병서는 “남측이 근거 없는 사건을 만들었다”고 전면 부인했다.
 
그러나 ‘비정상적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 한’이라는 조건을 달아 대북 확성기방송을 중단키로 한 것은 의미가 작지 않다. 이는 우리가 하기에 따리선 사실상의 재발방지효과를 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과대평가나 자화자찬은 금물이다.
 
과거 남북합의가 ‘합의를 위한 합의’에 그친 것은 역대 정권들이 장기적 안목이나 비전보다는 정권 차원의 가시적 성과를 내는 데만 매달렸던 것이 큰 이유다.
 
그런데도 여권 핵심들이 남북합의가 나오기 무섭게 ‘대통령의 원칙과 소신의 승리’를 외치기 시작했다. 벌써 축배를 들다가는 또 한 번 북에 당할지 모른다.
 
모든 협상에는 상대가 있기 때문에 100% 우리 뜻만 관철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도 북의 마지못한 유감 표명을 사과로 받아들이는 아전인수식 해석을 하기보다는 김정은이 합의를 반드시 실천하도록 압박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일각에서는 5.24 대북 제재조치 해제, 금강산 관광 재개, 나아가 남북정상회담의 가능성까지 점치지만 관계개선에는 순서가 있다.
 
이번 협상에서 북측은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운을 뗀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측 대표인 김관진 대통령국가안보실장이 청와대에 돌아와 “아직 그럴 단계가 아니다”는 입장을 보인 것은 적절한 대응이다. 각종 남북대화가 시작되는 것 역시 중요한 진전이다.
 
그러나 문제는 합의 이후다. 지금껏 남북관계는 ‘합의 이행’ 이라는 문턱을 한 번도 넘지 못했다. 이번이라고 해서 과거와 다를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
 
지금 정부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합의 그 자체가 아니라 북이 이번에 스스로 드러낸 취약점들이다. 중국이 대대적으로 준비하는 ‘9.3전승절’ 행사를 앞두고 무력도발을 감행해 북이 국제정세를 읽는 눈이 얼마나 뒤떨어져 있는가를 보여줬다.
 
우리군의 확성기방송을 비롯한 대북 심리전이 북을 얼마나 곤경에 몰아넣는가도 확인 됐다. 바로 이에 대한 정확한 답을 찾아내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그래야만 과거와 달리 실제 합의 이행으로까지 이어갈 수 있는 전략을 세울 수 있다.
 
북한의 DMZ 목함 지뢰 도발로 시작된 군사적 위기가 해결되는 과정은 과거 남북의 군사적 대치와는 다른 모습으로 진행됐다.
 
이번만큼은 ‘북한의 도발-협상-보상’ 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겠다는 전략이 그 바탕이었다.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는 북한이 준전시 상태까지 선포할 정도로 확대된 이번 사태의 전개과정에서 가장 특징적인 순간이었다.
 
남북관계에서는 돌다리를 거듭 두드려 보는 냉철한 접근이 필수다. 북은 작년 2월 이산가족상봉을 하던 중에도 미사일을 발사했다. 장거리 로켓과 핵실험을 멈출 리도 없다.
 
남북대화는 이어가야 하지만 과도한 기대로 판단을 그르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남남갈등도 이제는 종식될 때가 됐다.
 
sk1025@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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