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하의 詩心 世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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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9.06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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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늘시인 이영하
 
 
아직 돌아오지 않은 사람을 위하여
 
사람이 떠난 자리에는
언제나 기다리는 사람이 남는다.
나는 젊은 날 전투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
비상벨이 울리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조종간을 잡고 활주로를 박차 올랐다.
하늘에서는 모든 것이 빠르게 지나갔다.
그러나 돌아오는 길에는 언제나 하나의 생각이 있었다.
‘무사히 돌아가야 한다’.
 
활주로 끝에는 나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떠나는 비행기를 향해 손을 흔들었고
누군가는 말없이 돌아올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때 나는 몰랐다.
한 사람의 귀환이 남겨진 사람에게는
하루를 버티게 하는 가장 간절한 약속이라는 것을.
 
지금 네팔의 깊은 터널을 바라본다.
무너진 산과 흙과 물이 뒤엉킨 어둠 속에서
아직 돌아오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이름을 부르는 가족들이 있고
그 이름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긴 밤이 있다.
 
먼 곳에서 한 사람이 살아 나왔다는 소식에
기다리던 사람들의 가슴이 다시 한번 뛰기 시작했다.
아직 아무것도 끝난 것은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희망을 서둘러 말하지 않는다.
다만 한 삽의 흙을 걷어낼 때마다
한 사람의 이름을 마음속으로 부른다.
‘돌아오십시오’.
당신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당신이 돌아와야 할 불이 켜진 집이 있습니다.
 
나는 오래전 하늘에서 배운 귀환을 오늘 다시 생각한다.
돌아온다는 것은 한 사람이 살아서 오는 것만이 아니라
그를 기다리던 사람의 하루까지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는 일이라고.
 
그러므로 오늘도 우리의 기도는 멀리 가지 않는다.
한 사람의 이름 곁에 머물러
그 이름이 다시 목소리가 되기를 기다린다.
아직 돌아오지 않은 사람들,
부디 어둠을 지나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오십시오.
기다리는 사람들이 더 이상 하늘과 땅 사이에서
당신의 이름만 부르지 않도록.
 
 
<시작 노트> 아직 돌아오지 않은 사람을 위하여
 
2026년 8월 26일, 네팔 북부 트리슐리강 일대에서 발생한 대규모 홍수와 산사태는 수많은 생명을 앗아가고 삶의 터전을 무너뜨렸다. 수력발전소와 터널에도 거대한 물과 토사가 밀려들었고, 그 안에서 일하던 많은 사람들이 실종되었다. 한국인 근로자 아홉 명 역시 아직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실종 상태에 있다.
 
그런 절망 속에서 9월 4일, 트리슐리 3A 수력발전소 터널에서 두 명의 네팔인 근로자가 9일 만에 살아서 구조되었다. 그리고 다음 날인 9월 5일에는 한국 긴급구호대가 참여한 수색 과정에서 중국인 근로자 한 명이 열흘 만에 생존한 채 구조되었다. 그가 발견된 곳은 한국인 아홉 명이 실종된 Upper Trishuli-1 수력발전소였다.
 
이 소식은 아직 구조되지 않은 한국인들의 생존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칠흑 같은 터널 속에서도 사람이 열흘을 견디고 살아 돌아올 수 있다는 사실은, 이미 기다림의 끝을 절망으로 단정하려 했던 가족들에게 다시 작은 문 하나를 열어 주었다.
 
나는 그 소식을 접하며 오래도록 하늘을 바라보았다.
 
전투조종사로 살아온 나에게 ‘귀환’이라는 말은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비행기는 반드시 돌아와야 했고, 활주로에는 언제나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늘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에게 귀환은 하나의 절차였지만, 지상에서 그를 기다리는 사람에게 귀환은 간절한 기도였다.
 
그래서 이번 네팔의 소식을 단순한 구조 뉴스로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어딘가 어둡고 좁은 터널 속에서 아직 가족의 이름을 기억하고 있을 사람,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며 한 줄기 빛을 기다리고 있을 사람, 그리고 그들이 돌아오기를 바라며 밤마다 휴대전화를 손에서 놓지 못하는 가족들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먼저 구조된 사람들의 생존 소식은 우리에게 한 가지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고 해서 끝난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이 시의 제목을 처음에는 ‘대한민국은 아직 기도 중이다’라고 생각했지만, 더 절실하고 더 인간적인 제목으로 **「아직 돌아오지 않은 아홉 사람을 위하여」**라고 정했다.
 
이 시는 구조를 예언하는 시가 아니다. 생존을 단정하는 시도 아니다.
 
다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을 기록하는 시다.
 
구조대가 한 삽의 흙을 걷어낼 때마다, 가족들은 한 번 더 희망을 붙든다. 터널 안에서 작은 소리 하나가 들릴 때마다, 지상에서는 수많은 가슴이 동시에 뛰기 시작한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지금도 그 아홉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크지 않다.
 
현장으로 달려갈 수도 없고, 무너진 터널을 직접 파낼 수도 없다.
 
그러나 함께 기도할 수는 있다.
 
한 사람의 생명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마음, 구조대가 마지막 한 사람까지 찾기를 바라는 마음, 그리고 언젠가 공항이나 병원, 혹은 가족이 기다리는 문 앞에서 아홉 사람이 다시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부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그 마음을 모아 이 시를 쓴다.
 
부디 이 시가 절망의 기록이 아니라 기다림이 끝나지 않았다는 작은 증거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먼 네팔의 어둠 속에서 아직 우리에게 돌아오지 못한 아홉 사람이 있다면,
그들이 이 밤을 지나
다시 햇빛 아래 서기를,
 
그들의 가족이 다시 그 얼굴을 마주 보며
말없이 울 수 있기를,
 
대한민국의 기도가
그들이 돌아오는 날까지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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