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는 예고 없이 찾아온다. 그러나 사고가 끝났다고 해서 피해자의 고통까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진짜 고통은 그 이후부터 시작된다. 치료와 생계, 가족의 삶, 그리고 책임을 묻는 사법절차까지 모든 것이 이어져야 비로소 피해 회복의 첫걸음을 내디딜 수 있다. 그래서 형사사법 절차는 단순히 피의자를 처벌하기 위한 제도가 아니라 피해자의 일상을 회복시키기 위한 사회적 장치이기도 하다.
지난해 경남 의령에서 현직 경찰 간부가 몰던 로드자전거에 치여 60대 여성이 숨진 사건은 이러한 사법절차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경찰은 전문기관의 분석과 현장조사 등을 토대로 전방주시 소홀과 제동장치 조작 미숙 등 과실이 인정된다고 판단해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치사) 혐의로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이후 검찰은 보완수사를 거쳐 사건을 계속 검토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지만, 사고 발생 후 상당한 시간이 지난 현재까지 형사재판은 시작되지 않았다.
물론 검찰은 모든 사건을 객관적인 증거와 법리에 따라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경찰이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다고 해서 반드시 기소해야 하는 것도 아니며, 최종적인 책임 유무는 법원의 재판을 통해 가려지는 것이 원칙이다. 신중한 수사는 형사사법제도의 기본 가치이며,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적용돼야 한다.
그러나 신중함과 지연은 같은 의미가 아니다. 충분한 수사와 법리 검토는 필요하지만, 그 과정이 길어질수록 피해자가 감당해야 하는 현실적 부담도 함께 커진다는 사실은 결코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니다. 형사절차가 시작돼야 법원의 판단을 받을 수 있고, 그 이후에야 합의와 민사상 손해배상 등 피해 회복 절차도 본격적으로 진행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은 그 현실을 더욱 절실하게 보여준다. 숨진 여성은 편마비 장애를 앓는 남편과 중증 장애를 가진 아들, 건강 문제로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어려운 또 다른 아들을 돌보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 왔다. 한 사람의 죽음은 단순히 가족 한 명을 잃은 사건이 아니라 장애인 가족 전체의 삶을 뒤흔든 비극이 됐다. 남겨진 가족들은 생계와 간병이라는 무거운 현실을 감당하면서도 형사절차가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유족들이 요구하는 것은 특별한 특혜가 아니다. 처벌을 미리 정해 달라는 것도 아니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법이 정한 절차가 제때 진행되고, 법원이 증거와 법리에 따라 판단해 달라는 것이다. 그것은 피해자의 권리인 동시에 피의자의 권리이기도 하다. 재판은 유죄를 전제로 하는 절차가 아니라 사실과 법을 확인하는 과정이며, 그 절차가 적정한 시기에 진행될 때 비로소 사법에 대한 신뢰도 함께 세워질 수 있다.
이번 사건에서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이 현직 경찰 간부라는 점 역시 국민의 관심을 높이는 이유다. 경찰은 누구보다 법을 집행하고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는 직무를 수행하는 공직자다. 그렇기 때문에 사건 처리 과정 또한 일반 사건보다 더 투명하고 공정하게 진행된다는 신뢰를 국민에게 줄 필요가 있다. 이는 특정 직업군에 대한 가혹한 잣대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공권력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원칙이다.
피의자인 경찰관 역시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사고 직후 직접 119에 신고했고 여러 차례 유족들과 합의를 시도했지만 보상 범위에 대한 견해 차이로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원만한 합의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형사처벌 여부는 검찰과 법원의 판단에 따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러한 입장 역시 사법절차 안에서 충분히 존중받아야 한다.
결국 이 사건의 핵심은 누군가를 미리 단죄하는 데 있지 않다.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적용되는 법의 원칙이 적정한 시기에 작동하고 있는가에 있다. 법은 공정해야 하지만, 동시에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속도로 움직여야 한다. 절차가 장기간 멈춰 있는 동안 피해자는 피해자대로, 피의자는 피의자대로 불확실성 속에 놓이게 되고, 사회는 사법제도에 대한 신뢰를 잃게 된다.
흔히 "늦게라도 정의가 실현되면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피해자의 삶을 들여다보면 그 말이 언제나 위로가 되지는 않는다. 피해 회복에도 적기가 있고, 생계에도 시간이 있으며, 가족을 돌보는 일상에도 기다릴 수 없는 현실이 존재한다. 정의는 정확해야 하지만, 그 정의가 너무 늦게 도착한다면 피해자는 또 다른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사법절차는 사건 기록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삶을 다루는 일이다. 법은 차갑게 적용되더라도 그 결과는 국민의 삶을 향해야 한다. 이번 사건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질문은 단순히 한 건의 교통사고를 넘어, 신중한 수사와 신속한 절차 사이에서 사법은 어떻게 균형을 지켜야 하는가에 있다. 국민이 바라는 것은 특혜도, 예단도 아니다. 누구에게나 같은 법이 같은 기준으로, 그리고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시기에 적용되는 것이다. 그것이 법치주의의 본질이며, 피해자와 피의자 모두의 권리를 지키는 길이고, 사법에 대한 신뢰를 지키는 가장 기본적인 출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