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성수 시와 한 문장 ■ 「제1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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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07.06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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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밤에 마시는 녹차 한잔
 
 
차를 따른다
투박한 잔에 차향 고이면 밤하늘이 어느새 내려 와
찻잔 가득 늙어있다
뒷문 밖에서는 풀벌레 울음소리 간간하고
멀리서 한 사람이 차를 마시는지
문풍지가 파르르 떨고 있다
찻잔 속에 떠 있는 달의 흰 이마는 더욱 희다
허화를 제거하고 망상을 가라앉혀 주는
녹차 한잔은
그나마 작은 위로다
풍경 속으로 들어가지 못한 지난날들이
어딘가에 있을 입구를 찾고 있는
가을 밤
끝까지 가 봐도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비루한 삶으로 가득 찬 찻잔을
어루만지는 동안
가을밤은 남루해지고
새벽달은 빈 잔을 들고 서산을 넘어가고 있다
 
 
□ 정성수의 한 문장 □
 
목탁소리 청량한 금산사 입구 찻집 “산중다원”에서 한사람과 마주 앉아 차를 마신다. 낡은 기억 속 희미한 향기를 반추한다. 차향茶香 속에 사람이 있고 사람 속에 인향人香이 있다. 차茶로 청교淸交를 맺은 사람은 삼생三生을 같이 간다고 한다. 금산사 풍경소리는 찻잔 속에서 반향 되어 마주앉은 사람과 나 사이에 소리 없는 향기로 젖어온다. 더 많이 안아주고 싶은 사람 앞에 놓인 찻잔 속에 달과 별과 풀벌레소리 띄워놓으면 가을은 깊어간다. 대나무 잎에 맺힌 보석처럼 영롱한 이슬을 훑어다가 달빛에 끓여낸 차를 마실 때, 그립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사람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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