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노무현 재단 제공
<정치부=정완태 기자> 노무현 대통령 서거 9주기 추도식이 23일 오후 2시 경남 봉하마을 대통령 묘역인 생태문화공원에서 열렸다. 이날 추도식에는 권양숙 여사와 장남 노건호씨를 비롯한 유족과 노무현 재단 관계자, 참여정부 인사, 정당대표, 지자체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전 MBC 박혜진 아나운서의 사회로 진행됐다. 특히 추모무대를 가수 이승철의 노래 “그런 사람 없습니다”로 꾸며 눈길을 끌었다. 추모사는 정세균 국회의장과 노무현 시민학교 청소년봉하캠프 자원봉사자 조희연 노무현 장학생이 낭독했다.
다음은 정세균 국회의장의 추모사 전문.
존경하고 사랑하는 노무현 대통령님,
다시 5월입니다.
당신께서 우리 곁을 떠나신 지
어느덧 아홉 해가 흘렀지만
이곳 봉하의 봄은 여전히 푸르기만 합니다.
사람 사는 세상,
살맛나는 세상의 문은 활짝 열렸지만
그 기쁨만큼이나 당신의 빈자리가 아쉽기만 합니다.
이 순간 문득 우리 앞에 나타나
손을 흔들어 줄 것만 같은 당신 생각에
여기 모인 우리의 마음은
봄바람처럼 흔들리고 있습니다.
굵게 패인 주름 속에 빛나던 넉넉한 미소,
탁주처럼 걸쭉한 당신의 소탈한 목소리가
참으로 그리운 오늘입니다.
대통령님,
우리는 기억합니다.
취임 첫날, 청와대 집무실을 향하던
당신의 환한 미소, 당당한 걸음을 기억합니다.
그것은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희망의 미소였고
사람 사는 세상을 향한 힘찬 발걸음이었습니다.
우리는 기억합니다.
5.18 청문회에서 사자후를 토하던
당신의 울분과 결기를 기억합니다.
약자에 대해서는 한없이 관대했지만
불의와 부패한 권력에 대해서는
언제나 추상같았던 당신이었습니다.
우리는 기억합니다.
“이의 있습니다!” 외치던
당신의 불끈 쥔 주먹을 기억합니다.
당신께서는 이 땅의 민주주의 발전과
지긋지긋한 지역주의의 덫을 걷어내기 위해
모든 것을 바쳤습니다.
현실의 벽은 높았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편안한 길 대신 가시밭길을 자청했지만
단 한 번도 좌고우면하지 않았습니다.
황소의 우직함으로 앞을 향해 걸었고
마침내 깨어 있는 시민과 함께
세상을 바꿔냈습니다.
대통령님,
초선 국회의원 시절,
첫 대정부 질문에 나선 당신은
“모두가 먹는 것, 입는 것, 이런 걱정 안하고
하루하루가 신명나는 세상”을 만들자고 했습니다.
반칙과 특권이 없는 세상,
상식과 원칙이 통하는 세상.
당신은 그런 대한민국을 꿈꿨습니다.
소외된 이들과 함께 호흡한 인권변호사 노무현,
불의와 반칙에 타협하지 않은 정치인 노무현,
국민을 귀하게 여기고
권력을 탐하지 않았던 대통령 노무현.
우리는 그런 당신을 기억합니다.
구시대의 막내가 아니라
새시대의 밀알로 거듭난 당신을
우리는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역사 또한 당신을 기억할 것입니다.
민주주의를 키우고,
지역주의를 허물고,
남북평화를 위해 헌신했던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 노무현으로 영원히 새길 것입니다.
대통령님,
마지막 길을 나서기 전
비통한 심정을 토로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저를 버리셔야 한다!”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우리 국민은 당신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당신의 꿈은 이미 우리의꿈이 되었고,
그것은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2002년 12월 19일,
그날의 감격을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시민의 힘으로
대통령을 탄생시킨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난 해 5월 9일,
촛불의 힘으로 다시 새 정부가 탄생했습니다.
당신이 꿈꿨던 사람 사는 세상,
반칙과 특권이 없는 정의로운 나라가
시민의 힘으로 다시 세워진 것입니다.
퇴임 후 어느 날
당신은 제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부산 경남에서 10명의 국회의원만 나와도
지역주의가 해소됐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 젊은 후보의 연설장에 찾아가
경청하고 박수를 쳐주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지난 총선과 대선에서 우리는
지역주의의 강고한 벽이
허물어지고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그 물결은 더욱 거세질 것입니다.
여기 당신의 고향을 시작으로
제2, 제3의 노무현이
당신의 꿈을 이어나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못다 친 박수는
깨어있는 시민들의 함성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대통령님,
“작은 목표, 짧은 목표에
모든 것을 걸기 때문에 좌절한다”며
긴 호흡으로 역사를 보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한반도에는
평화의 봄기운이 넘실대고 있습니다.
어떤 겨울도 결코 봄을 이길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맞이하고 있는 한반도의 봄은
70년 세월이 만들어낸 반목과 갈등의 빙하를 녹이고
평화와 번영의 꽃을 기어코 피워낼 것입니다.
어떤 가치도 평화 위에 두지 않겠다는
당신의 말씀 깊이 간직하고 실현해 나가겠습니다.
우리가 가야할 길이 멀고 험난할지라도
다시는 과거로 되돌아가지 않겠습니다.
우직하게 한 길을 걸었던 당신을 따라
남아 있는 우리도 한 걸음 한 걸음
앞을 향해 나아가겠습니다.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고
당신 앞에 부끄럽지 않도록
나라다운 나라, 새로운 대한민국을 향해
쉼 없이 전진하겠습니다.
대통령님,
당신은 비록 떠났지만
당신의 향기는 더 큰 울림으로 남아 있습니다.
당신의 뜻을 받들고,
다듬고, 이어나가는 일은
이제 남은 우리의 몫입니다.
부디 시민의 힘으로 열어나갈
대한민국의 새로운 내일을 지켜봐 주십시오.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국민이 나라의 주인인 세상입니다.
아프고 소외된 이웃이 없는 세상입니다.
땀 흘린 만큼 정당한 대우를 받는 세상입니다.
어제보다 내일이 더 기대되는 세상입니다.
지역주의와 냉전의 벽을 허물고
평화와 번영의 시대로 나아갈 수 있도록
지혜와 용기를 주십시오.
당신의 열정,
당신의 사자후가 사무치게 그립습니다.
그러나 당신을 다시 깨우지는 않겠습니다.
이미 이곳에는 당신이 깨워준 우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남아 있는 이들을믿고 고이 쉬십시오.
대통령님의 영원한 안식과
여사님을 비롯한 유가족 여러분의 평안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