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엽의 과학으로 보는 문화] ‘테크노포비아’(technophobia)
기술공포증을 가진 사람들은 로봇이나 컴퓨터 등에 밀려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미국 베일러 대학) |
“한 달에 적어도 서너 차례는 컴퓨터 때문에 애를 먹어요. 프로그램이 다운되기도 하고, 접속 버튼을 눌렀는데도 응답이 없기도 하죠. 어떤 때는 평소 잘 되던 프린트 아웃마저도 잘 안 되는 거예요.”
“앞으로 이 직업을 제대로 해나갈 수 있을까”
법률 전문직에 종사하는 50대 중반의 C씨는 그런대로 업무 만족도가 높은 편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사무실에서는 종종 좌절감 같은 걸 느낀다고 한다. 컴퓨터가 말을 잘 안 들을 때, “앞으로 이 직업을 제대로 해나갈 수 있을까”하는 부정적인 생각까지 들곤 한다는 것이다.
“컴퓨터 기술자를 불러야 하는데, 비용은 별도로 하고 서너 시간씩 바쁜 와중에 손을 놓고 있어야 하니, 때로는 울화통이 치밀기도 합니다.” 그는 훗날 나이가 들어 일을 손에서 놓는다면 법률 전문지식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컴퓨터 장악력이 떨어지는 게 주요인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정보통신기기로 인한 좌절감 혹은 낙심은 업무 때문에 컴퓨터를 옆에 끼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그치지 않는다. 유치원 다니는 손녀 손자도 스마트폰의 애플리케이션을 자유자재로 다루는데, 자녀들이 사준 최신 스마트폰으로 인터넷 접속조차 하지 못한다며 ‘자탄’하는 어르신들도 주변에 적지 않다.
“SNS 같은 것들은 대체로 인간미가 없어요”
컴퓨터나 스마트폰 앞에서 장벽을 느끼거나, 혹은 이들 기기의 사용을 불편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물론 노인층에만 머물지 않는다. “저는 카톡도 페이스북도 하지 않습니다. 그런 거 없이도 얼마든지 소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SNS 같은 것들은 대체로 인간미가 없어요.” 수부(손 부위) 정형외과 의사들 사이에서는 꽤 이름이 널리 알려진 전문의 S씨는 스마트폰을 전화 걸고 사진 찍는 데 외에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국민소득이 높은 나라나, 좀 떨어지는 나라를 가리지 않고, 21세기 지구촌은 정보통신 문화의 시대를 나고 있다. 출근 준비를 위해 화장실에 들어가 있는 시간에도 스마트폰을 쥐고 있지 않으면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정도로 생활 깊숙이 정보통신 기기들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모임이나 웬만한 업무연락도 채팅이나 이런 저런 메시지 전송 방식으로 처리한다. 일부 직장에서는 상사들이 퇴근 후 스마트폰 등을 통해 업무지시를 하는 바람에 최근 논란이 되기도 했다.
세상만사 오로지 장점만 존재하거나, 온통 단점투성이 인 예는 찾아보기 힘들다. 정보통신 문화의 시대도 그 나름 빛과 그림자가 있는 건 당연하기도 하고, 피할 수 없는 측면도 있다.
정보통신 문화의 시대가 빚어내는 이런 저런 ‘묘한’ 양상들로써 주목해야 할 대목은 정보통신 문화를 수용하거나 창출하는 사람들 사이의 간극이다. 이 간극은 단순히 잘 사는 나라와 못 사는 나라, 혹은 잘 사는 사람과 못 사는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이른바 ‘디지털 디바이드’(digital divide)를 말하는 게 아니다.
컴퓨터나 스마트폰 사용이 평소 편치 않거나, 조금이라도 작동이 안되는 등 크고 작은 장애가 있을 때 공포감까지 느끼는 사람도 있다. (사진=저드 알트먼) |
경제적으로 여유 있고, 컴퓨터와 스마트폰 등의 본질, 그 사회적 맥락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만 정보통신 문화의 시대가 편치 않은 사람들이 적지 않다.
법률 전문직에 종사하는 예의 C씨나 전문의 S씨가 그런 예에 속한다. 이들은 특별한 이유 없이, 컴퓨터나 스마트폰 등을 최소한도로만 사용하는 축에 속한다.
컴퓨터의 각종 프로그램이나 스마트폰의 애플리케이션 활용법은 배우려고 마음만 먹으면 남들 정도는 하고도 남을 사람들이지만, 그냥 내키지 않아서 익히려 들지 않는 것이다.
정보화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도 개개인의 소질 성향 개성 등의 차이는 생활양상이나 직업 선택, 업무 처리 방식 등에 상당한 영향을 줬다. 그러나 정보화 이전의 시대에는 각자의 소질을 발휘 할 틈새나 생활양식을 고집할 여유 혹은 공간이 큰 편이었다.
스마트폰이나 컴퓨터의 그늘에서 주눅
반면 최근 꽃피우고 있는 정보통신 문화의 영향력은 이전 시대들에 비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압도적이다. 사무직 근로자든 육체 노동자든, 어린 아이든 노인 이든, 신체가 남보다 건강한 사람이든 좀 약한 사람이든, 단적인 예로 스마트폰이나 컴퓨터의 그늘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거의 무차별적으로 영향을 미치니, 정보통신의 위력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개성이나 틈새 시장 같은 걸 창출하기가 그만큼 힘들어졌다는 뜻이다.
돈이 없어서나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라, 컴퓨터나 스마트폰 등이 그냥 불편하게 느껴지는 사람들에게 정보통신 문화의 시대는 미묘하게 마땅찮은 시절일 수도 있다.
문제는 정보통신 기기 등을 선험적으로 달가워하지 않는 층이 사회 구성원 가운데 적지 않다는 것이다. 심지어 정보통신 기기나 로봇 등에 대해 불편을 넘어서 공포감 같은 걸 느끼는 사람도 있는데, 최근 한 조사에 따르면 3명에 1명 꼴 이상이라는 것이다.
미국 베일러 대학 연구팀이 3월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1500명 남짓을 상대로 분석한 결과, 이른바 기술공포증 즉 ‘테크노포비아’(technophobia)를 가진 사람이 37%에 달했다.
기술공포증이란 각종 정보통신 기기나 인공지능, 신기술 같은 것들을 대할 때 크든 작든 공포감을 갖는 것을 말한다. 분석 결과 기술공포증을 가진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예상된 것이기는 하지만, 신기술에 적응하지 못해 직업을 잃게 될까 걱정하는 성향도 훨씬 농후했다.
정보통신 기기 등에 대한 불편함 혹은 공포증은 선험적이라는 측면에서 뱀 공포증과 매우 유사하다. (사진=패트릭 코인) |
단순하게 얘기하면, 기술공포증을 가진 사람들에게 정보통신 문화의 시대는 뱀 공포증(ophidiophobia)을 가진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뱀을 대해야 하는 것과 비슷하다.
뱀 공포증이란 뱀이나 파충류를 그림만 봐도 몸서리칠 정도로 싫어하는 등의 현상을 말한다. 뱀 공포증 역시 기술공포증과 마찬가지로 후천적인 영향, 즉 뱀에 물렸다든지 하는 경험보다는, 아무런 특별한 이유 없이 그냥 선천적으로 뱀이 싫은 경우가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알려졌다.
조금 익숙해질만 한 하면 업그레이드 하라굽쇼!
정보통신 문화의 시대, ‘업그레이드’는 긍정과 찬사의 의미로 흔히 통용된다. ‘새 버전’과 ‘고 사양, ‘신 제품’에 환호하거나, 부러움을 드러내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업그레이드는 스트레스요, 골치일 수도 있다. 실제로 “윈도우 XP로 충분했는데, 왜 7이 나오고 10이 잇따라 출시되느냐”고 볼멘 소리를 하는 이들도 찾기 어렵지 않다.
업그레이드에 따른, 비용과는 전적으로 무관한 불평도 적지 않은 것이다. 쉴새 없이 이뤄지는 애플리케이션의 업그레이드와 각종 프로그램의 버전 업도 마찬가지로 받아들여 진다.
누군가에게 정보통신 시대는 복음이지만, 다른 그 누군가엔 골머리의 동의어일 수도 있다. 정보통신 기기 사용이 내키지 않는 사람들에게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류의 조언은 큰 도움이 안 된다.
기술공포증이 큰 사람들은 시쳇말로 짝사랑하는 이에게 차이는 것보다 컴퓨터를 만지작거리며 평생을 살아야 하는 게 더 힘들게 느껴진다고 토로할 정도이다.
직장의 안과 밖, 또 집 안팎에서 정보통신 기기의 세례가 알게 모르게 끊이지 않는 시대이다. 동료나 상사 부하, 혹은 식구들 중에도 컴퓨터나 스마트폰 등 때문에 속앓이를 하고 있는 사람은 없는지 한번쯤 살펴봐야지 않을까?
절대다수가 반기는 듯한 정보통신 문화의 시대이지만, 병 아닌 병, 증후군 아닌 증후군에 침식되는 이들이 생각보다는 훨씬 많을 수 있다.
◆ 김창엽 자유기고가
중앙일보에서 과학기자로, 미주 중앙일보에서 문화부장 등으로 일했다.
국내 기자로는 최초로 1995~1996년 미국 MIT의 ‘나이트 사이언스 펠로우’로 선발됐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문화, 체육, 사회 등 제반 분야를 과학이라는 눈으로 바라보길 즐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