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시1>
계묘년癸卯年 왈曰
늘어지게 한잠 자고 보니
거북이는
골인 지점을 통과하고 있었다
토끼는
속에서 불이 났지만
현실은 현실이었다
칼을 갈자 기회는 왔다
토끼가 거북이 등을 타고 용궁으로 호기롭게 갔다
간은 배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침 이슬을 받아먹는 풀잎 아래에 있었다고
연막을 치자
용왕은 낙심천만이었다
살아 돌아온 토끼는 군산 앞바다가 보이는 횟집에서
백고白鼓를 두드리며
시들어지게 한 곡조 뽑았다
인간사 또한 그렇다
승부의 세계가 냉엄하다고는 하지만
이겼다고 목에 깁스할 일도 아니고
졌다고
풀 죽을 일도 아니다
흐린 날이 있으면 화창한 날 있다
삶이란
엎어졌다 뒤집혔다 하는
꿈속의 꿈
토끼와 거북이 게임이 무승부인 것처럼
<축시2>
암가巖歌
바위는 뿌리가 있다
단단하고 묵중한 근본으로 천 년을 한자리에 앉아서
비가 온다고 우산을 펴들지 않고
칼바람이 몰아친다고
옷깃을 세우지 않는다
기쁜 마음으로 정釘을 받아드리는
바위는
큰 바위 얼굴이 되고 가슴에 시문을 새긴다
세상이 미워져 돌아앉아도
산은 여전하고
골짜기 물은 잘도 흐른다는 것을
바위는 안다
바위 속에서 지평선紙平線과 깨알 같은 글씨가
합궁해서 낳은
모래알이
한 점 먼지로 부유하는 그 날까지
침묵 한 덩이로 남은 바위는 애써 표정을 짓지 않는다
산이 깊을수록 못난 바위들이 산을 지킨다
<축시3>
보름달
토끼 부부가 달 속에서 절구질을 할 때마다
지상으로 글들이 쏟아졌다
고물고물한 글씨들은
정론 직필이다
신문을 펴들면
정치판은 이전투구장이고
사회는 시끄러워 두 귀가 먹먹하다
경제는
죽은 지 오래이고
문화판은 난삽해 이해 불가하다
불만과 불평이 팽창해도 누구 한 사람
시시비비를 가리지 않는다
달 아래에 엎드려 떡 하나를 받아먹는
인간들의 허기는 여전하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토끼 부부는 오늘 밤에도
묵묵히 떡방아를 찧는다
충혈된 눈과 짧은 팔로 빚은
희망의 떡 만복의 떡은
보름달이 되어
신새벽이 올 때까지 지난한 세상을 비추고 있다
<시작 노트>
토끼에 대하여
2023년 계묘년癸卯年의 계묘癸卯는 육십 간지 중 40번째로 '계'는 흑이므로 '검은 토끼의 해'다. 토끼는 온순하고 꾀가 많아 지혜를 상징하는 동물로 여긴다. 또한 새끼를 많이 낳는 번식력은 다산과 다복은 물론 풍요로움 뜻한다.
토끼는 포유류 토끼목 토끼과에 속하는 동물로 영어로 ‘Hare’에 해당하는 멧토끼류와 ‘Rabbit’에 해당하는 굴토끼류로 구분한다. 집토끼는 가축화된 굴토끼다. 멧토끼는 태어나자마자 눈을 뜬 상태로 걸을 수 있다. 하지만 굴토끼는 눈을 감고 태어난다. 굴토끼는 무리생활도 잘하지만 멧토끼는 혼자 살고 계절에 따라 털 빛깔도 바뀐다.
길쭉한 귀와 크고 동그란 눈을 가진 토끼는 사랑스러운 이미지로 민담과 우화는 물론 동요나 동화에 자주 등장한다. 삼국사기에는 신라의 김춘추가 군사를 요청하러 고구려에 갔다가 염탐꾼으로 몰렸지만, 토끼와 거북이 설화를 이용해 목숨을 건졌다는 이야기가 있다. 우화 소설 토끼전에서는 바닷속 용왕에게 간을 내어줄 뻔했지만, 기지를 발휘하여 위기를 모면하는 토끼의 모습을 그렸다.
뿐만 아니라 토끼는 연적이나 벼루 등 문방구 소재로도 사용된다. ‘백자 철화 토끼모양 연적’과 ‘청자 투각 칠보무늬 향로’ 등의 유물에서 앙증맞은 토끼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토끼의 형상을 인용한 지명으로 마을 모양이 토끼가 일어난 모습인 무안 '토기동兎起洞', 토끼 꼬리 모양을 닮은 강진 '토미재兎尾提', 토끼가 막 뛰어가려는 모습인 광양의 '토끼재' 등이 있다. 또한 마을 지형이 토끼가 달을 바라보는 형국인 무안의 '망월동望月洞’, 토끼가 달을 그리워한다는 뜻의 구례 '월암月岩', 토끼 모양인 뒷산이 남쪽 달을 바라보는 형상인 강진 '월남月南'이 있다.
새해 첫날에는 많은 사람이 새로운 각오로 담배를 끊겠다, 운동을 하겠다, 책을 많이 읽겠다, 다짐하고 출발한다. 부디 '작심삼일'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